[내일의 전략]기관은 복지부동, 관망만
전날(15일) 증시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프로그램이 오늘(16일)은 증시를 살렸다. 외국인의 현물 매도를 프로그램이 받아내며 한 때 10포인트 이상 하락하던 종합지수를 보합까지 끌어올렸다.
종합지수 종가는 993.13. 한 때 982까지 내려갔다가 11포인트 가까이를 만회한 셈. 코스닥지수도 한때 472까지 하락하다 오히려 1.64포인트 오른 483.66으로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시장)에서는 프로그램 매수가 구원자였고 코스닥시장에서는 개인과 기관이 외국인 매물을 받아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외국인이 매도 우위를 지속하는 가운데 프로그램 매매에 따라 장이 출렁거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11일)에는 프로그램 매수가 3000억원 이상 유입되며 장이 급등했고 이번주 월요일과 화요일엔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지며 장이 하락했다. 이날은 외국인이 현물을 2038억원 순매도하는 가운데 프로그램 매수가 1900억원 유입되며 하락을 막았다.
외국인 매도, 언제까지 이어질까
외국인이 이날로 10일째 순매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날 순매도 규모 2000억원은 10일간의 연속 매도 속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남미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있어 이머징마켓에서 글로벌 자금 이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머징마켓으로 지난주까지 자금 유입은 계속됐으나 앞으로 다소 주춤할 수 있다는 의견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유는 미국이 다음주 FOMC에서 금리를 인상하고 5월초에도 또 인상,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5월에 MSCI 지수내 대만 비중 확대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매도가 시장을 뒤흔들만큼 공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원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머징마켓의 펀더멘털이 최근 나빠졌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구조적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큰 펀드들의 경우 MSCI내 한국 비중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주요 펀드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비중축소' 혹은 기껏해야 '중립' 정도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주식을 내다팔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아울러 한국 시장을 팔고 마땅히 살만한 시장도 없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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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번 랠리의 핵심이 외국인이 아니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세중 동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도가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계속 때리니까 좀 멍이 들면서 투자 심리가 약화됐는데 중요한 것은 국내 투자자들의 에너지가 계속 보강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증시가 본격적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지난해 8월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000억원을 순매수하는데 그쳤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대비 0.1%가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반면 이 기간 국내 기관은 1조7419억원을 순매수했다. 특히 연기금의 순매수가 1조7391억원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은행은 5318억원을 순매도했고 투신 등 다른 기관들은 1000억~2000억원 순매수에 그쳤다.
핵심은 국내 기관
동원증권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 증시 역사상 이번 랠리만큼 외국인이 별로 기여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며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0.1%만 샀는데 주가는 40%가 뛰었고 환차익까지 고려하면 외국인 이익은 6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 실현 욕구도 이해할만하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본질은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자금이 기관화되어 증시로 유입될 것이란 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시장의 모든 펀드, 즉 채권형, 주식형, MMF 등을 포함해 주식 비중은 5.5%로 이머징마켓 평균 11%, 선진국 평균 40%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김 연구원은 "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동시에 펀드내 주식의 비중도 높아지는 질적 확대가 일어날 것"이라며 "현재는 이러한 기관화된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초기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최근 증시는 국내 기관의 주식형 자금은 가만히 있고 외국인과 프로그램만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자금 유입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데다 지수가 많이 높아져 부담스런 상황에서 살만한 종목 찾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갭 메우기 차원의 주가 상승이 일단락되면서 싼 종목이 많이 줄었고 금리보다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도 거의 사라지면서 선뜻 손이 나가는 종목이 없다는 지적.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는 "살만한 매력적인 종목이 줄어 현금 비중을 높였다"고 말했다.
국내 기관은 관망
또 하나 문제점은 주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 기관의 대기 매수세가 그리 풍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국내 기관들이 비차익으로 이익을 좀 실현했지만 주식을 상당 부분 들고 있어 국내 기관 유동성은 그리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일부 기관은 현물 주식을 좀 팔고 헤지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950선에서는 매수하겠다고 대기하는 연기금이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법인영업 담당자는 "과거에는 어제처럼 주가가 급락하면 투매가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프로그램을 제외한 기관들 운용 주식에서 매도는 거의 없다"며 기관들이 다들 중기적으로는 상승 관점에서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장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해서 관망하고 있으며 주식을 어느 정도는 들고 있어 큰 자금 집행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기관들은 크게 동요하며 주식을 팔 생각도 없지만 주가가 좀 떨어졌다고 지금 적극적으로 매수할 자금도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증시는 당분간 경기 회복과 글로벌 자금의 흐름 등을 지켜보면서 지지부진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VIP투자자문 김 대표는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지수가 940일 때보다 10만원 정도 더 낮은데 지수는 현재 990"이라며 "개별 종목들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당분간은 좀 보수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경기 회복, 내수 회복, 기업연금제도 시행 등에 따른 증시로의 지속적인 국내 자금 이동 등을 감안해 사고 싶었던 주식을 살피며 매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동원증권 김 연구원은 "주식형 수익증권 자금이 10조원을 넘었다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며 "피델리티 같은 세계적인 운용사들이 왜 국내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