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전략]수도꼭지를 잠그는 손
"○○일 □□시부터 △△시까지 수도물 공급이 중단될 예정이오니 주민들께서는…"
퇴근 길 집 주변에서 '상수도 공사중' 표지판을 발견한 날은 으레 집 현관에서 이런 안내문을 접하게 된다. 만약 단수 시간이 아침이라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최소한 머리감고 세수할 물은 미리 받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유동성의 첫번째 수도꼭지를 틀어쥐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시장에 안내문을 내려보냈다.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빠르게 잠글 수도 있으니 준비하세요"
지난 22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발표문에 실린 문구다.최근 몇 달동안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고,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은 더 뚜렷해졌다(Pressures on inflation have picked up in recent months and pricing power is more evident)
지난 2월까지는 FOMC 발표문에 이 같은 문구가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RB가 물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4년여 만에 처음이라며 이는 '점진적(Measured) 금리인상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동안 저금리와 넘치는 유동성 덕분에 흐드러지게 돈 잔치를 벌였던 전세계 자산시장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안내문이다. 이번 FOMC 회의에서 연방기금 금리는 2.5%에서 2.75%로 높아졌지만, 이후 3%로 높아질 경우 실질금리가 플러스도 돌아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유동성과 미국의 소비 2가지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석규 B&F투자자문 사장은 "과거 미국이 금리를 끌어올릴 때는 이머징마켓에서 유동성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국시장에도 외국인의 매매가 그다지 좋게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23일 외국인은 한국에서 1000억원 어치를 순매도하며 15일째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대만에서는 이날 하루동안에만 약 3000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박석현 교보증권 책임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저축률은 1월 기준으로 1% 수준에 그치고, 2월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나 늘었다"며 "FRB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서라도 금리인상을 통해 과열된 소비를 진정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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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전무 "오랫동안 저금리에 젖어온 많은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자산가격의 변화는 실제 금리인상 속도를 앞서갈 수도 있다"며 "원자재와 1차 금속 등 금리에 민감한 업종의 주식은 좀더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적 반등 신호?
23일 유가증권(거래소) 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13.60포인트(1.39%) 떨어진 966.81로 장을 마쳤다. 반등 하루만에 다시 하락한 것.
외국인은 998억원 매도우위를 보이며 15일째 순매도를 이어갔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IT주였다. 기관은 169억원 순매도를 기록했고, 개인이 887억원 어치를 순매수하며 매물을 거둬들였다. 거래대금은 2조3604억원으로 전날보다 소폭 늘었다.
장중 52주 신고가를 경신한 종목들은 동아제약 등 8개 뿐이었고, 하락종목수가 591개로 상승 종목수(154개)의 4배에 달했다.
교보증권 박 책임연구원은 "지난 10거래일 가운데 단 2일만 상승해 투자심리도가 20% 수준에 그치는 반등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기술적 반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박경일 미래에셋증권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950선을 기술적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며 "950선을 지킬지 여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PI, 인플레 우려 키우나
22일(현지시간) 열린 FOMC 회의 결과는 시장의 예상과 일치했다. FRB는 투자자들이 주목했던 '점진적' 문구의 삭제 대신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며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였다.
장기 인플레 전망이 잘 억제돼 있지만 최근 몇개월간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으며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이 보다 명확해졌다고 말해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FRB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4년여만에 처음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또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의 상승 위험이 '서로 엇비슷하다(Roughly equal)'는 이전을 표현을 '적절한 통화정책에 의해(With appropriate monetary policy action)' 비슷하게 유지돼야 한다고 바꿔 향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마리아 피오리나 라미레즈의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슈아 샤피로는 "모두가 '점진적'이란 표현의 삭제에 주목하느라 다른 문구들이 보다 공격적으로 바뀔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에 대한 FRB의 분명한 입장 표현으로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나스닥지수의 경우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2000선이 붕괴됐으며 다우지수는 1월28일 이후 7주일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날 주요 지수들이 일중 최저치에서 마감돼 23일 장초반 추가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스펜서 클라크의 수석 시장 전략가 마이클 셸던)
또한 향후 보다 공격적인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채권수익률은 급등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지표물인 국채10년물 수익률은 전일 대비 0.1%포인트 오르며 4.6%대로 치솟았다. 이는 8개월래 최고치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노동부는 개장전인 오전 8시30분(한국시간 오후 10시30분)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발표한다.
FRB가 전날 발표문을 통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핵심 CPI가 '눈에 띄게' 높아지지는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시장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감이 큰 상태다.
뉴 밀레니엄 어드바이저의 마이클 카티는 "연료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이 CPI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식할 것"이라며 "에너지가격 상승이 CPI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면 시장은 다시 한번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2월 CPI가 0.3% 상승해 1월의 0.1% 상승에 비해 그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으며 변동성이 큰 음식료와 에너지가격을 제외한 핵심 CPI는 0.2% 상승해 전월과 같은 상승폭이 같을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