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당당한 부자]제3부 ②확산되는 유산 기부

얼마 전 70대 할머니가 자살을 했다. 처음에는 병고, 가난, 고독, 소외감으로 하루 평균 7명꼴로 발생하는 노인 자살 중 한 명이려니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60억원대 갑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때부터 자살 이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잣대는 아니더라도,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살며 남 보기에 번듯한 자식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할머니는 적어도 당장의 병원비가 없어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가장이나, 빚 독촉에 어린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할머니가 죽음을 택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편과는 이혼을 했고, 자식들은 그 엄청난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서로 싸우고 이간질 했다고 한다. 비관한 할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결국 죽음을 택했다는 씁쓸한 내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또 다른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올해 여든인 할머니는 전세 1500만원짜리 옥탑방에 살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로 매월 30여만원 안팎의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마저도 매월 20만원은 장애아들이 있는 복지관에 기부를 하고, 나머지 돈으로 각종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로까지 사용한다. 그렇게 사시다가 80평생 모은 전재산이랄 수 있는 전세금 1500만원을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으로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후 시신까지 기증키로 약속한 할머니는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할 뿐이란다. 그리고 남편은 물론 자식도 셋이나 있지만 재산 3억여원을 유산으로 기부키로 한 할머니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이지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일찍이 미국의 대부호였던 카네기는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일은 최선을 다해 스스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자식을 위한 일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상속세 폐지 법안에 대해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재산가들이 비영리공익단체들과 더불어 반대운동을 펼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상속세까지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는 소위 ‘있는 사람들’만을 접한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도 했다.
“죽은 후에도 부자인 사람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오늘날 미국의 기부문화를 만들어낸 앤드루 카네기 이후, 역대 최대 기부금을 낸 빌 게이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대표적 인물의 조지 소로스 등 미국은 재벌 기업가들이 유산 기부와 부의 사회환원의 중요성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기업가들을 만날 수 있을까. 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기업가 개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자신의 재산을 자식이 아닌 사회에 환원하려는 기업가를 꿈꾼다.
후쿠야마 교수는 『트러스트』라는 그의 저서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든, 서비스든 무엇을 바라지 않고 대가 없이 남에게 주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기부나 자선이라는 예외적 행위가 있다고 말한다. 대가없이 나와 관계가 없는 남에게 주는 금전 또는 재산적 가치의 기부는 신뢰를 밑바탕에 두지 않는 사회에서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후쿠야마 교수가 방한했을 때, 한국은 혈연, 학연, 지연에 기초하는 저(低)신뢰 사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기업이나 세계 공동모금회 중 최고의 모금 성장률을 보이는 고(高)신뢰 사회의 모습도 함께 가진 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이 가진 저력과 열정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신뢰 사회의 문턱에 있으며, 이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나눔을 실천하며 나눌 수 있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