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시장이 살아나야 벤처도 살아난다"

"M&A시장이 살아나야 벤처도 살아난다"

대담=김영권 정보과학부장
2006.08.21 12:25

[머투초대석]고정석 벤처캐피탈협회장

"국내 벤처생태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고정석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요즘의 벤처시장을 보면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해야 예전처럼 벤처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그렇게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벤처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곳이 많아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벤처기업들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나스닥이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주 중심 증시와 함께 선발 IT 기업을 중심으로 한 M&A 시장이 활발하기 때문이란 게 고 회장의 생각이다.

미국 벤처캐피탈의 경우 M&A를 통한 자금 회수가 80~90%에 달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는 10~20%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IPO를 통한 회수가 90%를 넘는다.

그래서 그는 "M&A라는 또 다른 회수시장이 커지면 그만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 회장은 올해가 벤처업계에 있어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해라고 강조한다. 지난 2000년 거품 붕괴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벤처생태계에 다시 한번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벤처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M&A 시장의 활성화를 강조하시는데 이로 인해 벤처기업가들이 기술·제품개발보다 머니게임 등 재무적인 데만 관심을 가져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벤처기업의 M&A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M&A 당한 벤처기업의 창업주입니다. 물론 일부 벤처기업가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있을 수 있습니다. 2000년 몇몇 벤처게이트 이후 사고가 있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M&A 시장의 활성화는 이러한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크다고 봅니다. 창업에서 IPO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IPO 숫자도 줄고 있는 추세에서 IPO 전 M&A를 통한 자금 회수는 벤처생태계 자금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나스닥에 상장하기 전에 인텔이나 시스코 등의 대기업에 회사를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를 팔아 돈을 번 벤처기업가는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거나 다른 벤처기업들에 투자를 합니다. 증시를 통한 회수보다 빠른 시간에 자금을 회수한 벤처캐피탈들도 자연스럽게 창업초기 기업에 투자를 늘리는 등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할 여력이 생기겠지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벤처기업 M&A에 대해서만큼은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를 인정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4년 벤처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당시, 정부뿐 아니라 일부 벤처기업인들도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 완화에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벤처기업에까지 확대돼서는 안된다는 논리였지요.

▶당시 일부 벤처기업인들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벤처업계까지 미친다며 반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텔과 같은 세계적 대기업들도 하는데 우리 기업들이 출총제에 묶여 벤처에 투자를 마음대로 못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벤처투자를 과감히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준다면 벤처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SK텔레콤이 인수해 크게 성공한 '싸이월드'처럼 말이지요. 요즘은 벤처기업인들도 대기업의 벤처기업 M&A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벤처 발전을 위해 해결돼야 할 사안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벤처펀드의 안정적인 출자기반이 취약한 것도 문제입니다. 미국은 벤처펀드의 90% 이상이 연기금, 기관투자자 및 학교재단 등 안정적인 출자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와 창투사 정도가 안정적인 출자자로 평가되는데 그 출자 비중도 약 40% 정도로 취약한 구조입니다.

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산업은행 등에서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일정 비율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배정하고, 법적 규제가 있는 일부 기관투자자의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호저축은행의 출자를 허용하고, 은행·보험의 출자승인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벤처캐피탈이 벤처생태계를 이끄는 선두주자가 돼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수준이 아닌 듯한데 어떻게 보십니까.

▶벤처캐피탈의 역할은 좋은 기업을 선별해 그 기업을 키우는 것인데 현재 국내업체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인정합니다. 미국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엔지니어 출신이 많은데 비해 우리는 재무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국내 벤처캐피탈리스트 중 엔지니어 출신은 40%를 넘지 않습니다. 그나마 엔지니어 출신들도 업계에 7~8년 이상 있었던 게 아니라 2~3년 있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도 많이 변했습니다. 신규 채용시 엔지니어 출신 위주로 뽑습니다. 문과출신은 삼성전자 등에서 경력을 많이 쌓아야만 뽑습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우리의 역량도 점차 강화되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과거 거품때의 눈먼 투자 때와는 실력이 분명 달라진 상태입니다.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쟁력은 취약하다 생각됩니다. 국내 벤처캐피탈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벤처캐피탈이 주로 투자하는 IT기업들은 대부분 글로벌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벤처캐피탈도 당연히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업계의 글로벌 능력은 아직 부족한 현실입니다.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해 해외 벤처캐피탈들과 합작으로 펀드를 만들어 해외에 진출하고, 해외 벤처캐피탈 자금의 국내 펀드 유치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선진 외국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배우고 있습니다.

해외시장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중국시장을 뚫는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의 '샨다'라는 회사는 국산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을 중국시장에 유통해 크게 성장했습니다. 우리 벤처캐피탈들도 '미르의 전설'과 같은 펀드를 조성해 중국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일신창업투자 하면 생각나는 게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입니다. 요즘 주력하고 있는 투자부분은 어디입니까.

▶90년대 중반 '은행나무침대'를 시작으로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말죽거리잔혹사' 등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IT기업에 대한 투자가 절반을 넘고 영화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쪽은 25% 정도에 불과합니다.

영화투자는 현재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험(리스크)에 비해 투자수익률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91년 일신창투 사장을 맡으신 이래 16년간 벤처캐피탈 업계에 종사하고 계신데 그동안 업계 흐름을 정리하신다면.

▶일신창투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회수시장도 없고, 투자할 기업조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90년대 중반 메디슨, 미래산업이 상장되면서 벤처가 본격적으로 태동했고, 90년대 말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2000년 거품 붕괴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당시의 투자 덕에 코스닥 시장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기술주 회수시장이 됐습니다. 지난 10년간 압축적인 발전을 하다보니 벤처게이트 등 여러 부작용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이만한 시장을 만든 점은 큰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의 기술주 시장이 문을 닫았고, 일본의 자스닥도 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벤처기업이 많다는 이스라엘에도 자체 벤처금융은 없고, 외부자본에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증시 역시 기술주를 위한 곳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코스닥시장은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기술주 회수시장이라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 벤처가 본격 등장한지 10년째인 올해는 벤처생태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2000년 거품 붕괴로 벤처생태계가 황폐화된 이후 다시 자금이 들어와 생태계 부활을 도와주고 있는데 여기서 실패하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탈이 벤처투자와 활성화에 더욱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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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석 사장은?

지난해부터 벤처캐피탈협회장을 맡고 있는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은 벤처캐피탈(VC)업계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인물 중 하나다. 1991년부터 일신창투 사장을 맡아왔으니 업계의 터줏대감 격이다.

그보다 앞서 80년대부터 VC업계에 종사한 1세대들이 아직 현역에 있지만 최고경영자(CEO) 경력만 놓고 본다면 그를 능가할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협회장을 맡기 전에도 업계 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 의견을 개진했다.

그의 인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다. 고 회장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이른바 `올백' 스타일을 16년째 고수하고 있다. 30대 중반 나이에 사장을 맡다보니 어려 보이지 않기 위해 넘겨빗은 머리 스타일을 50줄에 들어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

1957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50이지만 고 사장의 얼굴은 30대 중후반으로 여길 만큼 앳돼(?) 보인다. 그만큼 스트레칭 등으로 건강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올백'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머리를 내리면 어리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 경영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일신방직 기획실에서 2년간 근무하다 유학, 미국 MIT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맥킨지에서 2년간 근무하다 1991년부터 일신창투 사장을 맡고 있다.

◇약력 △57년 서울 출생 △76년 서울 중앙고교 졸업 △8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학사) △82년 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과학과 졸업(석사) △89년 미국 MIT 경영대학원 졸업(박사) △82~83년 일신방직 기획실 근무 △83~89년 미국 MIT 경영대학원 △89~91년 맥킨지 LA사무소 근무 △91년~현재 일신창업투자㈜ 대표이사 

정리=전필수 사진=최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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