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중소기업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이번 위기가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와 달리 주요 타격대상이 몇몇 대기업이 아니라 블특정다수의 중소기업들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특징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중추역할을 소리없이 해왔고, 고용의 보고이기도 하다. 발등에 떨어진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행에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라고 하고, 대기업에게도 협조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은행은 여전히 중소기업 대출의 문턱이 내리지 않고 있고, 돈을 쌓아두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에 냉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에 눈치가 보이니 마지못해 시늉을 하는 척에 그치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한 중견기업 사장은 정부가 중소기업들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한가지만이라도 제대로 고쳐줬으면 좋겠다면서 '어음'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공사대금을 받으러 가는 길은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기분이란다. 돈 주는 쪽이 대기업이다보니 칼자루를 저쪽이 잡고 있다. 약속한 날짜가 돼서 가보면 이래 저래 핑계를 대고 미루기 일쑤다. 꼭 외상술값 받으러 온 사람 취급이다. 그래도 언제쯤 줄테니 그때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라도 들으면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씁쓸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차일 피일 미루기를 6개월가량 지속하는 대기업도 있다고 한다. 정말 지독한 것은 그렇게 기다린 납품업체에 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것이다. 대금일 결제되기까지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6개월동안 기다렸는데 6개월짜리 어음이라니'라며 속이 타 들어가지만 그래도 어음을 받았다는 기쁨이 아주 없지는 않단다. 문제는 어음을 받고 나면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음이 혹여 부도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 발생한 어음이어서 은행에 가서 할인이라도 받아 돈을 쓰면 좋으련만 그것도 여의치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창구에서 대기업이 발행한 어음이라고 해서 모두 할인을 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독 몇몇 대기업만 이러는 게 아니다. 굴지의 S그룹 계열사도 최근에는 어음을 내주는 시기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그 사장은 전했다. 계열사마다 행태도 천양지차다. 일부 대기업중에는 최근 은행에서 발행한 어음이 아니라 시중에서 인쇄한 이른바 '문방구 어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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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음을 받아놓고서는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어쩌다가 이런 어음제도가 생겨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그 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정부가 이번 위기에 어음제도만이라도 고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어음은 12세기경 이탈리아 및 지중해 연안에서 각 도시의 환전상에 의하여 발행된 것을 기원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당시에 금전의 운반은 많은 비용과 위험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각국은 금전의 운반을 금지하고 어음을 이용토록 했다고 한다. 이후 은행 등 금융기관이 활성화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