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수수료 수익자 귀속 원칙 악용 거액 증여.."명백한 탈세, 개선책 마련 시급"
#자산가 김모씨는 지난 5월쯤 아들과 함께 국내 주식형펀드에 20억원을 투자했다. 김씨는 19억원, 아들은 1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 펀드는 투자자가 부자(父子) 단 2명으로 이뤄진 사모펀드다.
몇 달 후 사모펀드가 30% 가량 수익을 올리자 김씨는 이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지급하고 펀드를 중도 해지했다. 김씨가 낸 환매수수료는 3억9900만원 정도.
이 돈은 펀드 환매수수료 규정에 따라 잔존 수익자인 아들에게 넘어갔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비과세(주식 매매차익)로 결국 김씨는 세금 한 푼 안 내고 아들에게 거액을 증여한 셈이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사모펀드가 일부 거액 투자자들의 편법 증여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실제로 등장하고 있다. 펀드의 환매수수료는 잔존 수익자에게 귀속된다는 제도적 맹점을 악용해 편법으로 거액을 증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의 일부 프라이빗뱅커(PB)나 파이낸셜플래너(FP)들은 사모펀드 영업을 위해 이 같은 환매수수료를 이용한 편법 증여를 조장하고 있다.
환매수수료란 펀드를 중도 환매할 경우 수익의 일정부분을 일종의 벌금처럼 지급하는 것으로, 안정적인 펀드운용과 잔존 수익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현재 공모펀드는 감독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입후 90일내 환매 시 이익금의 30~70%를 환매수수료로 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2인~50인 이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의 경우 환매수수료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 없다. 투자자와의 계약에 따라 환매수수료 부과기간과 비율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일부 PB와 FP들은 사모펀드의 이런 규정을 악용, 거액 투자자들을 상대로 절세수단으로 펀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비과세(주식 매매차익)여서 부모가 일부러 중도 환매하고 이익의 일부를 자녀에게 넘겨도 세금을 안내도 된다. 증여세가 금액별로 누진 적용돼 최대 50%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막대한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PB나 FP들에게 절세는 가장 큰 영업도구"라며 "세금 한 푼 없이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거액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종 절세수단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부모가 사모펀드 중도 환매로 이익을 자녀에게 돌리는 것은 증여 의도가 분명한 것으로 세법상 명백한 편법 탈세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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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한 PB센터 세무사는 "증여세는 포괄주의이기 때문에 증여 의도만 있어도 과세가 가능하다"며 "사모펀드의 환매수수료를 이용해 부모가 자녀에게 이익을 넘기는 것 역시 포괄주의에 따라 증여에 해당되는 것으로 세금을 안냈다면 편법 탈세"라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이 같은 편법 탈세를 막을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한 자산운용사 상품개발팀장은 "운용사는 수익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모펀드가 편법 증여로 이용되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며 "편법 증여를 막기 위해서는 환매수수료를 폐지하거나 가입자를 제한해야 하는데 이 경우 잔존 수익자의 피해, 투자자의 권익침해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당국도 판매사들의 창구지도 밖에 막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사모펀드를 이용한 편법 증여는 환매수수료를 남용한 것"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규제할 명확한 기준이나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사모펀드의 환매수수료를 폐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관계자는 "환매수수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사모펀드의 특성이 편법 탈세를 부추기는 면도 있다"며 "이해관계자들과 전문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사모펀드의 경우 환매수수료를 폐지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주식형 사모펀드 설정액(15일 기준)은 7조6805억원으로 주식형펀드 환매 속에도 올 들어 1231억원 순증가했다. 사모펀드 수는 392개로 같은 기간 126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