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존립근거다. 공영방송 입장에서 수신료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고 시청자 주권을 실현하는 토대가 된다. 국민 입장에서 수신료는 공영방송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공영방송은 엄밀한 의미에서 수신료만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수신료와 더불어 광고를 주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수신료는 1981년 2500원으로 책정된 이래 지금까지 인상되지 않았다. 때문에 수신료 대비 광고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S는 디지털 전환, 난시청 해소 등 공적책무 확대 차원에서 수신료 인상을 계속 요구해왔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신료 부과 대상 TV가 600만대에서 2009년 약 2100만대로 늘었고, 징수방식도 한국전력에 위탁하면서 99%에 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신료 인상 효과를 누려왔다는 의견이다.
수신료 인상에 앞서 내부개혁이 선행돼야 하며, KBS의 정치적 편향성과 편파성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KBS 이사회는 지난해말 광고를 그대로 유지하되 수신료만 1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의결했고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이를 수용했다. 단, 수신료 인상근거가 충분하지 않고, 재원구조 정상화를 통한 공영성 강화나 콘텐츠 질 향상에 미흡하다는 부정적 의견과 인상분에는 타당성이 인정된 공적책무 확대방안의 성실한 시행과 프로그램 제작비 확대 및 상업재원 축소 등이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건의 의견서를 여당 추천 위원 단독으로 채택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수신료 인상안 처리과정을 지켜보며 아직 우리나라는 공영방송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제도적 뒷받침이 정착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공영방송에 대한 제도적 틀을 재정비하고 공영방송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설정한 이후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광고를 줄일 경우 광고비가 종편PP로 흘러갈 것이라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수신료를 1000원 인상하되 광고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타협안이 등장한 것도 문제지만 방통위가 KBS 이사회가 제시한 수신료 인상안의 적정 여부만을 따지고 몇 가지 조건을 부여하는데 머물렀던 것도 문제다.
방통위는 공영방송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위해 수신료가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어야 했다. 즉, 수신료를 기반으로 하고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는 공영방송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수신료 현실화 및 광고 폐지 그리고 정치적 독립성 보장을 통해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KBS1 TV, EBS를 공영방송으로 두고 KBS2 TV와 MBC는 상업재원으로 운영하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상파방송으로 재편하는 방안 등 다양한 공영방송제도 개선방안, 그리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무와 그에 필요한 수신료 규모가 얼마인지, KBS와 EBS 간에 적정한 수신료 배분비율은 얼마인지 산정하는 기구를 마련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방안을 국회에 제안했어야 한다.
공영방송은 시장과 분리되어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공영방송은 상업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여론을 형성하며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상업적 경쟁력을 앞세운 매체와 채널이 증가할수록 국민들은 공익적 가치를 가진 공영방송의 존재에 더욱 목말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임시국회가 11일로 끝나기 때문에 이번 회기에서 수신료 처리는 어려워 보인다. 국회가 KBS 수신료 인상안을 언제쯤 처리할지 알 수 없으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수신료를 처리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공영방송 구조는 무엇인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무는 무엇인지, 그에 필요한 재원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수신료 인상안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