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영호 액세스 바이오(Access Bio) 대표 "가격은 환자형편에 맞게"
"존경하는 선교사께서 아프리카에서 급성 말라리아로 사망하셨습니다. 조치가 빨랐다면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최영호(50) 액세스 바이오 대표는 "말라리아 같은 급성 질병에 걸렸는데 검사 결과를 2~3일씩 기다리면 환자는 사망하고 만다"며 "진단시약은 사람의 질병을 빠르게 진단해 생명을 살리는 약"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최 대표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며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당시 한국에 유전공학을 처음 소개했던 이세영 교수에게서 생명공학의 꿈을 키웠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카이스트(KAIST)에 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제일제당에 입사했으나 진단시약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최 대표는 1990년 11월 미국 진단시약 전문 벤처회사인 PBM을 설립한 강제모 박사의 요청으로 도미하게 됐다.
PBM에서 12년간 근무하며 세계 최초의 심장마비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등 PBM을 중견 회사로 발전시켰다. 이후 진단 분야에서 스스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은 열정에 2001년 9월 액세스 바이오를 창립했다.
말라리아 진단 시약 개발은 2005년에 시작했다. 당시 액세스 바이오와 거래 중이던 한 고객은 "너희가 가진 기술이면 세계 최고의 말라리아 키트를 생산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와 함께 공동개발에 돌입, 2006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이 고객은 인지도가 낮았던 액세스 바이오를 WHO(세계보건기구)에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2007년, 말라리아 시약으로 국제 시장에 진출하던 시기에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마다가스카르 현지기관의 발주를 받아 경쟁입찰을 거의 다 따낸 상태에서 경쟁사인 한 유럽 회사의 모함으로 입찰 취소에 직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세계보건기구 총재였던 이종욱 박사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
이 박사의 도움으로 글로벌 펀드가 진상 조사에 나섰고, 150만 달러 규모의 신제품이 그대로 재고가 될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최 대표의 가장 큰 자부심은 "말라리아 키트가 생명을 살리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기업명 액세스 바이오(ACCESS BIO)도 '생명에 접근한다'는 뜻이다. 최 대표는 "생명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도구인 진단시약으로 인류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환자의 경제 수준에 맞는 가격 정책을 유지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회사의 이익을 실현하되 제 3세계에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로서 인류의 복지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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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나의 어린시절은 가난했고 가진 것이 없었다"며 "그랬던 내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제품, 특히 생명을 구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며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