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템플턴등 해외본사 펀드 1개에 전부 투자...'금융허브' 명분 '특혜'
-국내 재간접펀드와 형평성 어긋..해외투자도 위축
-업계 "재간접 헤지펀드처럼 분산투자로 규제해야"
세계 우수한 펀드에 분산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자는 해외 재간접펀드(Fund of funds)가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외국계 운용사들의 간접운용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외국계 운용사들은 해외 재간접펀드를 해외본사의 1개 펀드에 '몰빵'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 보호 문제와 토종 운용사의 해외투자 위축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해외 재간접펀드는 몰빵투자 상품?
23일 금융투자협회 및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15개 외국계 운용사(외국자본이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운용사)들이 국내에서 설정한 공, 사모 해외펀드는 총 316개로 설정액은 15조2141억원에 달한다.
이중 해외 재간접펀드는 145개, 3조1969억원으로 펀드 수 기준으로 전체 45.8%, 설정액 기준으로는 2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가 가입한 외국계 운용사의 해외펀드 절반가량은 해외 재간접펀드인 셈이다. 특히 골드만삭스운용과 얼라이언스번스틴운용의 해외펀드는 모두 해외 재간접펀드이다.
외국계 운용사들의 해외 재간접펀드 대부분은 해외본사 펀드들에만 투자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채권연구원을 통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계 운용사의 간접운용(위탁운용+재간접펀드) 중 해외본사 비중은 91.5%나 됐다.
심지어 해외본사의 단 1개 펀드에 '몰빵' 투자하는 해외 재간접펀드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해외본사의 펀드를 그대로 가져다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례로 프랭클린템플턴운용의 해외 재간접펀드 중 설정액 규모가 가장 큰 '템플턴차이나드래곤자[주식-재간접]A'은 해외본사 펀드인 'Templeton China Fund X(acc)'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또 피델리티운용의 '피델리티이머징마켓자(채권-재간접)(A)'는 'Fidelity Funds Emerging Market'에, JP모간운용의 'JP모간인디아(주식-재간접)A'는 'JF India Fund-X(acc)-USD'에 각각 집중 투자하는 등 해외 재간접펀드가 해외본사 상품의 국내 판매를 위한 도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재간접펀드는 투자대상 펀드들의 듀딜리전스(Due Diligence, 평가분석)가 필수적이다"며 "하지만 외국계들은 이런 작업을 무시하고 해외본사 상품의 판매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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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법 개정 바로 잡아야"
200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해외 재간접펀드가 1개의 역외펀드에 몰빵 투자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당시 해외 재간접펀드는 같은 회사 상품에 50%, 같은 펀드에 20% 이상 투자할 수 없었다. 최소 2개 이상의 해외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5개 이상의 펀드에 투자해야 하는 것.
하지만 2009년 7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국내에 등록된 역외펀드에 한해서는 단 1개라도 100% 투자가 가능해졌다. 외국계 운용사들이 해외본사 상품을 이용한 해외 재간접펀드를 본격 출시한 것도 이 때부터다.
업계관계자는 "외국계 운용사들이 역외펀드가 잘 팔리지 않자 법 개정 로비를 펼친 것으로 들었다"며 "토종 운용사들은 국내 펀드산업 및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외 재간접펀드와 달리 국내 재간접펀드는 5개 이상의 펀드를 편입해야 하기때문에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해외 재간접펀드는 상품을 가져다 파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등 자본시장 개방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국내 운용사들의 해외진출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운용사들은 해외펀드를 판매하기 위해 해외 현지법인 설립 등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데 반해 외국계 운용사들은 해외 재간접펀드를 이용해 손쉽게 영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처럼 외국계가 손쉽게 영업을 할 경우 국내 운용사들은 사실상 해외 네트워크 개발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재개정에는 소극적이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당시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동북아금융허브의 일환으로 글로벌 운용사들을 유치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잘못된 점이 없지 않지만 다시 개정하는 것은 정책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는 "펀드시장 개방 효과는 없고 국부만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적 신뢰를 지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재간접 헤지펀드처럼 업계 모범규준이나 감독당국의 상품인가 재량권을 활용해서라도 외국계의 얌체상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