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학계의 반발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지만 앞으로 집필진으로 참여할 학자나 교수들을 찾는 데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정부가 이미 내락된 집필진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교육계 안팎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상당수 역사학자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뜻을 함께하는 극소수 학자만이 집필에 참여하면 결국 교과서가 우편향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교육부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중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행정예고했다.
국정화 추진이 본격화되면 편찬업무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일임한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교과서의 검정업무만을 담당한다. 따라서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려면 공모 등을 통해 새 집필진을 모집해야 한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진) 인선문제는 교육부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전적으로 맡겼고 어느 정도 내락된 분들이 있다"며 이미 염두에 둔 교수나 교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전환이 확정되기 전부터 사실상 내정된 학자가 있었던 것으로, 누가 내락됐느냐를 놓고 교육계 안팎에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교과서 내용이 집필진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어떤 인사가 업무를 맡느냐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보수성향의 학자들로 인해 교과서가 우편향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사부장을 맡은 진모씨의 역사왜곡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국편 편사부장 자리는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전환할 경우 개발과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진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을 역임하며 교육부의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정책 1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정진후 의원은 "진 편사부장이 관여해 지난달 23일 고시된 교육과정에는 광복절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일'로 변경돼 있다"며 "이는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뒤바꾼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내락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부담을 무릅쓰고 역사교과서 집필진에 자원할지도 의문이다. 이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역사관련 학과 교수들이 국정화에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며 전국적으로 국정화에 반대한 교수, 연구자는 총 2648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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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창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국정화 교과서에 찬성의사를 표명한 학자가 열손가락 안에 드는 만큼 학계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추세"라며 "이미 교육부의 검정, 수정명령을 거쳐 나오는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발행될 역사교과서가 우편향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는 학자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역사학계가 좌편향됐기 때문'이라는데, 이렇게 정부에 낙인 찍힌 사람들이 집필진으로 임명될 수 있겠느냐"며 "결국 교육부와 연결된 일부 '어용학자'만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또 "국정화 교과서의 최종 발행인은 교육부이기 때문에 저자가 쓴 내용도 결국 교육부가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있는 구조"라며 "어떤 인사가 집필진으로 들어가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혁·최민지 기자 uto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