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투자노트]
금수저·흙수저론이 회자되고 있지만 그래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희망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자수성가형 부자가 상속형 부자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수성가형 부자가 대세라는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에선 상속형 부자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로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젊은 세대에선 상속형 부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부를 축적할 시간이 짧은 젊은이가 부자라면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벤처 대박을 맞은게 아닌 한 부모한테 물려 받은 재산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젊은 상속형 부자의 증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한 마디로 농경시대·산업시대 때 통용되던 근면·성실의 가치가 힘을 잃고 있다고나 할까. 정보기술(IT)의 시대, 인공지능(AI)의 시대, 저성장·저금리의 시대에 열심히 일해 월급 받아 저축하며 자산을 불러가는 옛 부자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미국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마법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U.S.트러스트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8~35세인 밀레니얼 세대의 부자 45%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이는 X세대로 분류되는 40대 부자 가운데 부유하게 자란 사람이 28%, 50대 이후 베이비부머 부자 가운데 금수저인 사람이 18%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밀레니얼 부자는 미국 전체 부자의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 놀라운 점은 밀레니얼 부자가 상속받은 자산으로만 부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밀레니얼 부자들은 부를 어떻게 축적했느냐는 질문에 부의 절반을 근로소득(사업소득 포함)으로 모았다고 답했다. 유산의 비중은 20%였는데 이는 X세대 10%, 베이비부머 8%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부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X세대나 베이비부머와 비슷했다. 부의 나머지 부분은 투자소득이 차지했다. 물론 부모가 엄청난 부자인 밀레니얼 부자들은 부의 절반 가량을 상속 받았다고 답했다.
중요한 사실은 갑부의 자식이 20~30대 젊은 시절에 부모처럼 부자가 됐는데 부의 절반 정도만 상속 받고 나머지는 자기가 근로를 통해서든, 투자를 통해서든 직접 벌어서 부를 늘렸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의 금수저들은 이전 부잣집 도련님처럼 돈을 벌 줄은 모르고 방탕하게 돈이나 쓰는 ‘철부지’들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밀레니얼 부자들은 평균 만 14세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이는 X세대 부자가 16세 때부터, 베이비부머 부자가 22세 때부터 일을 시작한 것에 비해 더 어린 나이다. 밀레니얼 부자는 투자의 세계에도 일찍부터 눈 떴다. 밀레니얼 부자가 투자를 시작한 나이는 평균 만 22세로 24세인 X세대나 25세인 베이비부머보다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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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 여겨볼 점은 밀레니얼 부자들은 자라면서 이전 세대의 부자들보다 절약이나 검약, 공부의 중요성을 크게 강요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밀레니얼 부자 가운데 자랄 때 절약을 중요한 가치로 배웠다는 대답은 39%에 그쳤다. 반면 X세대는 60%, 베이비부머는 75%가 자랄 때 아껴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밀레니얼 부자들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 학문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가르침도 X세대나 베이비부머보다 덜 받고 컸다.
자랄 때 받은 이런 교육의 차이로 인해 밀레니얼 부자들은 X세대나 베이비부머보다 성공의 비결로 근면·성실이 갖는 가치를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 근면·성실보다는 인맥이나 멘토(정신적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누구를 만나 어떤 기회를 얻느냐, 누구를 만나 어떤 배움을 얻느냐가 아침 일찍 출근해 밤까지 소처럼 일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지금은 1명이 99%를 차지하고 99명이 나머지 1%를 나눠 갖는 시대다. 전세계가 밀접하게 통합되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적인 스타가 있을 뿐 과거처럼 지역별로 스타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앉은 곳에서 전세계 어디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든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일하는 시간에 따라 시급, 월급을 받는 사람은 1%를 나눠 먹는 99명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99%를 독점하는 한 명은 부자로 태어나 은수저나 동수저, 흙수저들과 아예 출발선이 다르거나 예능이든 사업이든 세계인의 시선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천재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여전히 자녀에게 근면·성실·절약을 강조한다면 농경시대 때 유물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