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미래'의 길, '신영'의 길

[우리가보는세상]'미래'의 길, '신영'의 길

최석환 기자
2016.06.13 09:1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가끔 나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맛집이 있다. 아무 때나 찾아가면 바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말이다. 대부분 입소문을 탄 맛집들은 줄을 서거나 오래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눈앞에서 재료가 떨어졌다며 문을 닫으면 그 야속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최근 다녀온 강원도 고성에서 그런 집을 발견했다. 메뉴는 단출했다. 막국수에 수육을 곁들일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담백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얇은 메밀면의 맛은 순간순간 먹는 게 아까울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주문 후엔 추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면을 더 달라고 해두는 게 노하우로 소개될 정도다. 워낙 유명해진 탓에 손님들이 북적거려도 준비한 재료만 팔면 장사를 접는다. 비좁은 주차장과 좌석, 예약을 받지 않는 불편함은 덤이다.

이 집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오랫동안 지켜내는 '노포(老鋪)'의 기운이 가득한 맛집들은 몇가지 공통된 특징들이 있다. 식당 자체가 화려하지 않고 허름해 보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운치가 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스런 원칙들을 세우고 이를 유지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한다. 맛의 내공이 깊고 차별화된 비법을 간직하고 있다. 적어도 나만의 수첩에 적어둔 노포들은 그렇다.

서두부터 맛집 얘길 꺼낸 이유는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불고 있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 바람에 대한 사견(私見)을 풀어볼까 해서다. 실제로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면서 불붙기 시작한 증권사들의 몸집불리기 경쟁은 사활을 건 승부로 인식되면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미 NH농협증권이 우리투자증권과 합쳐 거대 증권사(NH투자증권(39,200원 ▲2,450 +6.67%))로 재탄생했으며, KB투자증권도 마지막 대형매물로 나온현대증권인수에 성공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M&A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어떤 방법으로든 대형 증권사를 인수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금융사는 커지면 커질수록 규모의 경쟁력을 갖게 되고 증권업도 지속적으로 자기자본이 커져야 한다"며 "증권 부문 자기자본이 8조원이 됐으니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아직 갈증이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현대증권 인수전에 우회적으로 참여한 미래에셋의 행보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투자업계의 미래가 대형화에만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앞서 소개한 '노포'처럼 차별화된 성공의 DNA를 창조해가는 길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신영증권(243,000원 ▲2,500 +1.04%)이다. 순자산 규모로는 대형사에 밀리지만 탄탄한 재무구조를 강점으로 45년간 흑자행진을 이어오면서 '대를 이어 거래하는 증권사'로 자리매김했다. 백화점식 경영이 아닌 잘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고객들이 찾아오는 증권사를 만든다는 최고경영자(CEO)의 비전도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가다. 가치투자를 바탕으로 장기투자 철학을 내세우며 영업의 중심을 주식 위탁매매에서 자산관리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혁신적인 행보로 최하위권에서 선두권 자산운용사로 올라선 메리츠자산운용도 눈에 띈다. 존 리 대표 취임 이후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기 위해 본사를 서울 여의도에서 북촌으로 옮기고, 장기투자의 철학을 지킬 수 있는 대표펀드만 일부 남기고 수많은 펀드들을 정리했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보고서 작성과 회식 문화도 없앴다. 달라진 분위기로 인해 운용자산은 존 리 대표 취임 2년만에 600억원에서 4조원으로 늘었다. 대표 상품인 메리츠코리아 펀드도 지난해 1조3000억원의 자금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며 최고의 펀드로 등극했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선 지점 영업 대신 중소·벤처기업 자금조달 업무와 부동산·신재생에너지금융, 해외대체 투자 등을 전문으로 2013년에 새롭게 출발한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의 성과가 주목할만하다. 금융의 벤처를 기치로 내걸고 수익성을 끌어올려 업계 최고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달성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대마불사'가 꼭 맞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박삼구의 금호그룹이 그랬고 강덕수의STX(3,530원 0%)그룹과 윤석금의웅진(2,420원 ▲75 +3.2%)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금융투자산업을 키우는 방식엔 미래에셋의 길도 있고, 신영증권의 길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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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환 기자

"위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던 셰익스피어의 말을 마음에 담고, '시(詩)처럼 사는 삶(Deep Life)'을 꿈꿉니다. 그리고 오늘밤도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 적어둔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란 글을 곱씹으며 잠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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