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파는 게 죄인가요?"

"벤처 파는 게 죄인가요?"

정현수 기자
2011.12.13 05:00

M&A에 유독 부정적인 국내 정서… 벤처생태계 선순환 위해 활성화해야

[편집자주] 스마트폰의 빠른 확산과 모바일 산업 활성화가 '제2의 벤처 붐'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벤처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수합병(M&A)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벤처M&A에 대한 소식에는 여전히 "먹튀다. "건실한 기업의 싹을 잘랐다"는 반응이 빠지지 않는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M&A는 진짜 해악적인 수단인가. 오히려 성공적인 출구전략(EXIT)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많이 등장해야 벤처 창업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M&A에 대한 인식을 바꿀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 매출 35억원. 2007년 창업 후 동영상 검색분야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췄지만 일반인들에게 존재감은 없다. '엔써즈'란 벤처 얘기다. 그러던 엔써즈에 최근 큰 일이 일어났다. 지난 5일 엔써즈가 KT에 인수된 것. KT가 평가한 회사 가치는 450억원. 국내 벤처 인수합병(M&A) 중 손에 꼽히는 큰 규모 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성공한 벤처 출구전략(EXIT)'으로 평가했다. 이준표 엔써즈 부사장은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직원들 역시 "대기업 계열사가 됐다"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비판적인 시각도 나왔다. 대기업이 유망 벤처의 싹을 잘랐다는 것이다. 벤처 M&A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여지없이 보여준 셈이다. 강석흔 본엔젤스 이사는 "기업은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아직은 강하기 때문에 M&A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상실감이 작용하고 있다"며 "여기에 벤처 투자 붐이 일던 2000년 초반, 해외자본에 휘둘리거나 대주주 '먹튀' 사례가 나오면서 부정적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 역시 관측되고 있다. 벤처 활성화를 위해 M&A를 활성화는 필연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구글이 활발한 M&A로 실리콘밸리의 벤처 생태계를 풍성하게 했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구글식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 속에 M&A가 벤처 생태계 발전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엔써즈의 사례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엔써즈는 벤처의 기술력과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대기업의 M&A로 꽃을 피운 사례다. 엔써즈는 회사가 정식 설립되기도 전인 지난 2006년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만큼 기술력의 비전을 인정받았다.

엔써즈에 투자한 본엔젤스 역시 M&A로 자금을 마련한 곳이다. 본엔젤스는 2006년 검색업체 '첫눈'을 NHN에 매각한 장병규 대표가 설립한 곳이다. 장 대표는 첫눈을 350억원에 매각했다. M&A로 자금력을 확보한 장 대표는 초기기업 전문 투자사를 설립해 엔써즈를 비롯한 여러 벤처에 투자를 진행했다.

이후 엔써즈는 기술력 향상에 몰두했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인 KT의 눈에 들었다. KT는 엔써즈의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엔써즈와 시너지를 내기로 했다. 엔써즈도 KT의 자본력과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더욱이 엔써즈에 초기 투자한 본엔젤스 역시 10배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KT의 엔써즈 M&A에 앞서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티켓몬스터가 미국 리빙소셜에 인수된 것. 당시 티켓몬스터의 기업 매각은 엔써즈 건과 달리 비판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1차 책임은 티켓몬스터에 있었다. 지난해 5월 국내 첫 '쇼셜커머스' 분야에 발을 내딘 티켓몬스터는 설립이 얼마 안된 직후부터 M&A설에 시달렸다. 특히 수익모델을 안정적으로 갖추기 전,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서 회사 매각을 위한 덩치 불리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몇번의 매각설, 그에 대한 부인을 거친 후 결국 리빙소셜로 인수가 확정되자 '먹튀' 논란이 제기되며 부정적 평가가 주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M&A 직후 만난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는 "창업 이후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했다. 창업 과정, 이후 기업으로 안착하는 데 쏟았던 열정보다 M&A 결정 이후 주변의 비판이 더 힘들었다는 의미다. 외국기업에 인수됐지만 티켓몬스터는 대표부터 임직원 하나 바뀌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당시에도 무조건 비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티켓몬스터의 행동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었지만 M&A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모바일 서비스 확산을 계기로 다시 벤처 붐이 일자 벤처 1세대들은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M&A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008년 태터앤컴퍼니를 구글에 매각한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벤처의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티켓몬스터의 창업 컨설팅을 담당하기도 했다.

'첫눈'을 매각한 장병규 대표 역시 "페이스북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힘들더라도 나름 일정 규모 이상의 엑시트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M&A가 벤처 생태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장 대표 역시 M&A를 통한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A를 통해 성공적으로 엑시트에 성공한 창업가들이 벤처 투자에 나서거나 또 다른 벤처를 창업하고, 이들을 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창업의 희망을 꿈꾸게 된다"며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시들해진 상황에서 M&A가 벤처의 활로 모색과 국내 벤처 생태계 발전에 거의 유일한 해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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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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