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23.7%로 노키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휴대전화를 포함해 백색가전과 반도체 등 하드웨어 분야에서 보여준 한국기업의 성과는 눈부시다. 그러나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2.7%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역설적이지만 대한민국은 IT 하드웨어 강국인 동시에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빈국인 셈이다.
산업은 인식의 투영이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하드웨어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바르게 인정하지 않는 근본적인 인식 문제에 기인한다. 돌이켜 보면 PC와 상용 소프트웨어가 첫 선을 보이던 1980년대에 생겨난 '하드웨어는 사는 것, 소프트웨어는 공짜로 주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애초에 바로 잡았어야 했고,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소프트웨어를 자산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지 못한 업계의 소극적인 대응도 아쉽기만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유독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큼은 허술한 인식과 나아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가치 판단마저 부족한 기형적인 인식 구조를 갖게 됐다. 사람들은 하드웨어로 표현되는 IT 기기에서 더 나은 기능을 발견하고 향유하지만 그것이 상당 부분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가능하게 됨을 알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자산으로 관리하는 기업이나 기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자산관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부기관과 기업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도 정부의 소프트웨어 자산관리 지원을 의무화한 소프트웨어 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때맞춰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와 소프트웨어연합(BSA) 등 관련 단체들도 소프트웨어 자산관리 인증제 도입 등 인식 확산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나섰다. 소프트웨어 자산 관리에 대한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자산관리는 소프트웨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무형의 자산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소프트웨어는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해야 한다. 적법하게 사용권한을 취득한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관리하는가? 사용권한은 재산권 또는 자산으로 인식하여 이에 맞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자산관리사와 같은 전문 인력도 필요하다.
적절한 소프트웨어 자산관리는 IT 부서에 적지 않은 혜택을 가져다준다. 먼저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의 중복 구매나 재구매, 유지보수 비용 등을 효율화해 총소유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차제에 관리 프로세스를 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저작권 관련 소송과 같은 경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줄일 수 있게 해준다. 기업이 주기적인 소프트웨어 자산관리를 진행해온 사실이 확인되면 고의가 아닌 과실로 판단해 불법소프트웨어 사용에 대한 처벌도 면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핵심 자산이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바르게 인정하고, 자산으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이나 기관이 늘어날수록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IT 강국으로 거듭나는 방법은, 오늘 바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