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계 3번째' 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를 가다…거대과학연구시설 상대국 견제도구로

쭉 뻗은 75미터(m)짜리 원통형 금속관 '양성자가속기'를 만나기 위해 작은 마을들을 굽이굽이 싸고도는 마을길을 따라 차량으로 진입했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소재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로 가는 길, 설렘도 잠시였다.
덜컹덜컹 비포장 도로가 나타나자 인솔자가 "다 왔으니 내리라"고 했다. 처치곤란 돌무더기와 황량한 부지에 빈 안내동, 흰색 페인트칠이 덜 마른 듯한 연구동과 가건물 두 채가 전부였다. 이곳이 정말 '전 세계 3번째'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거대과학연구시설은 그 나라의 첨단과학기술 경쟁력과 직결된다. 예컨대 △고효율 전력반도체 △땅 속에서 자연분해되는 플라스틱 △전기자동차용 연료전지 촉매제 △암 치료 장치 △인공위성에 탑재될 전자부품 이 모두가 양성자가속기 연구설비가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물이다.
이 뿐이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휴대폰의 기판, 컴퓨터의 하드웨어, 신용카드의 자기 필름도 양성자가속기 연구실험을 통해 만들어낸 성과물이다.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국내 21개 산학연과 10년간 협력해 구축했다. 2005년 경주시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유치한 대가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다.
연구센터를 짓는 데는 말못할 고충이 있었다. 특히 문화재 출토지역인 경주에서 18만㎡ 부지에 연구센터 짓는다는 것은 공사가 중단될 게 불보듯 뻔했다. 이에 경주시는 연구센터동에 전시시설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착공을 허락했다.
현장관계자에 따르면 공사 중 발견한 유물이 예상을 넘어선 1300여점 가량 된다. 전 세계 최초로 역사(박물관)와 과학(가속기장비)이 공존하는 시설이 된 셈이다. 또 사업비가 쪼들려 빔라인 부품을 중국서 국내보다 60%정도 싸게 제작해 들여왔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다.

센터에는 100Mev(메브·100만전자볼트) 양성자가속기 및 양성자빔 이용공간인 TR23(20Mev 빔라인), TR103(100Mev 빔라인) 설치돼 있다. 연말까지 시범운전한 후 내년 3월부터 정상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속기 시설은 설계 및 시공·운영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 2006년 3월 첫삽을 뜬 연구센터는 총 3147억원(국비 1965억원, 지방비 1182억원, 민간 129억원)이 우선 투입됐다. 한 해 전기료는 40억원, 가속기 가동 없이 항온·항습 등 시설 유지에만 연간 1억2000만원, 여기에 냉각수 비용 3000만원 등의 예산숫자만 보면 '억' 소리가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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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2단계 사업부지에 1Gev(게브·10억전자볼트) 2MW(메가와트) 초전도 선형가속기 개발하는 사업확장 추진을 앞두고 있다. 건설비는 7500억원, 완공후 운영비는 연간 600억원 가량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용을 고려할 때 시설이용료가 제법 높게 책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원칙상 연구센터는 국가 SOC(사회간접자본)으로 분류돼 있는 데다 해외연구시설을 보더라도 실비를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김귀영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 박사는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굳이 시설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며 "외국에선 시설 이용 후 나온 연구성과를 공개할 경우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도 비슷한 비용정책을 운영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자체 시설이 없다면 해외장비를 값싸게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전도 건지지 못할 이런 거대 양성자가속기 프로젝트를 정부가 추진한 까닭은 뭘까.
이에 대해 김 박사는 "삼성전자가 가장 가까운 일본의 양성자가속기 제이팍(JPARC)에서 반도체나 스마트폰 칩셋 연구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요즈음엔 국내기업이 해외 양성자·중이온·전자가속기를 이용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면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선 자리가 없다며 돌려보내기 일쑤다. 이제 거대과학연구시설이 경쟁국의 기술발전을 방해하는 일종의 견제도구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