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준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지난달 말 찾은 강남세브란스병원 지하 1층의 방사선치료센터는 암 환자로 붐볐다. 방사선 의료 장비가 설치된 3개의 치료실에는 의사, 의료기사가 미리 찍은 CT 화면을 보며 치료 범위를 논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 공백으로 인해 암 수술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방사선 치료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흔히 암 완치나 말기 암 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해 방사선 치료를 선택한다고 알지만, 사실 방사선의 적용 범위는 그보다 훨씬 넓다. 배우 김우빈씨가 걸린 비인두암은 항암, 방사선 치료가 수술을 대체하는 '표준치료'로 정립된 지 오래다. 수술이 어려울 만큼 직장암이 커진 환자나 전립선암도 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행해 각각 크기를 줄여 수술하거나 완치를 노릴 수 있다. 3기의 비소세포폐암도 방사선 치료로 면역반응을 활성화한 후 면역항암제를 사용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보편화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21년 MRI와 선형가속기를 결합한 엘렉타의 '유니티'라는 방사선 치료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종전에 CT 영상만으로 치료 범위를 확인했던 것보다 장기 등 연부조직을 훨씬 자세히 볼 수 있어 세밀한 방사선 조사가 가능해졌다. 작은 차이 같지만, 이것이 방사선을 암을 잡는 '명사수'로 거듭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김준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암 환자의 60~70%는 완치를 위한 목적이나 수술 전, 후 종양을 축소·제거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활용한다"며 "유니티의 도입으로 암 환자의 치료 부작용과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돼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방사선 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꼼꼼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방사선치료센터 내 CT 시뮬레이션실을 두고 방사선 치료 시 사용하는 장비와 치료 자세를 똑같이 취한 채 CT 촬영을 시행한다. 이를 '설계도'로 삼아 방사선 조사 위치와 선량(강도) 등을 미리 정해 치료에 활용한다. 김 교수는 "방사선을 쏠 부위와 선량을 정밀하게 결정할수록 더 많은 정상 조직을 보호할 수 있고, 주변에 장기가 모여있는 민감한 부위도 안전하게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존 방사선 치료 장비도 '한계'는 존재한다. 첫 번째는 실시간으로 방사선 치료 과정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위, 대장, 폐와 같은 장기는 자세나 호흡에 따라 위치가 변하는데 이를 미리 찍은 CT로는 알 수가 없다. 방사선 치료 장비로 CT 촬영을 할 수는 있지만 치료용 방사선과 간섭 현상이 나타나 화질이 고르지 않다. CT 시뮬레이션을 통해 치료를 설계해도, 치료 시 환자의 종양이 눈에 띄게 커지거나 전이되는 등 변화가 관찰되면 방사선 조사를 중단한 뒤 새롭게 설계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두 번째, 치료 범위를 넓힐 수밖에 없었다. 의사들은 "'마진'(margin)을 둔다"고 표현하는데, 오차를 감안해 방사선 조사 범위를 더 넓히는 것이다. 정상 조직에 불가피하게 방사선을 쏘거나 인접한 중요 장기·신경·혈관 등을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방사선 치료 장비에 CT 대신 MRI를 설치하면 어떨까? 우선 자기장을 이용한 MRI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CT와 달리 치료용 방사선과 간섭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치료 중에도 종양과 주변 장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니티의 MRI는 현재 의료 현장에서 적지 않게 쓰는 1.5테슬라(T)의 고해상도라 종양과 주변 조직의 경계를 세밀하게 구분해 방사선 치료 범위를 한층 더 줄일 수 있게 한다. 종전에 치료 설계 시 간암에 마진을 1~1.5㎝ 뒀다면 유니티로 치료하는 경우는 이제 5㎜, 작게는 3㎜까지 줄일 수 있다. 치료 당일 CT 결과가 방사선 치료 설계와 차이가 있더라도 MRI를 이용해 즉석에서 환자 이동 없이 치료 계획을 재수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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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 시 몇 ㎜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간 기능이 떨어진 간암 환자에게는 간부전을 좌우하는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먹는 감 정도 크기의 전립선의 암은 유니티를 통해 줄인 3~4㎜의 차이가 방사선 조사 범위에 방광이 포함되느냐 마느냐를 가른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X선으로 찍은 뼈를 기준으로 삼거나 금으로 된 마커를 심어 위치를 잡고 방사선을 조사했다. CT가 접목된 후 장기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됐고, 이제는 MRI를 활용해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종양 윤곽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의사로서도 더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임할 수 있게 됐다. CT로 인한 방사선 피폭 걱정 없이 전립선, 간암 등의 마진을 줄이고 부작용도 훨씬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통상적인 방사선 치료보다 더 많은 방사선량을 한 번에 조사해 치료 횟수와 기간을 단축하는 '소분할 치료'도 눈에 띄는 변화다. 간암은 보통 15회 치료했던 데서 유니티로는 10회, 짧게는 3~5회로 마무리하는 사례가 나온다. 치료 횟수를 줄이는 대신 암이 사멸할 수 있게 한 번에 더 큰 선량을 쏴야 하는데, 정상 장기 손상을 덜 걱정하게 되면서 치료 강도를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방암에서는 이미 표준화되고 있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소수의 전이 종양이나 간암, 전립선암, 췌장암 등에 선량을 높이고 횟수를 줄이는 치료를 많이 시도하고 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는 한 번에 끝나는 '방사선 수술'도 현실화할 것"이라 내다봤다.
유니티를 도입한 이후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다른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암 환자를 의뢰받는 '4차 병원'으로 부상했다. 종양 근처에 장기가 딱 달라붙은 환자도, 체력 부담이 큰 고령이나 부작용 우려에 치료를 주저한 재발 환자도 유니티를 활용해 최대한 치료하고 있다. 지난 7월까지 3년간 유니티로 이뤄진 방사선 치료는 1000건이 넘는다. 고난도 환자 사례까지 포함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숫자다.

기술과 의학의 접목은 김 교수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는 유니티 도입 후 동영상 MRI 촬영을 통해 뇌종양 환자의 방사선 치료 중 시신경이 이동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학계 등에 보고했다. 눈을 감아도 환자의 눈이 움직이면서 시신경이 따라가기 때문인데 유니티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던 사실이다. 기존처럼 CT를 찍고 치료했다간 마진을 벗어나 결과가 나빴을 수 있었다. 다행히 유니티로 치료한 환자는 치료 후 정상 시력을 거의 회복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유니티로 방사선 치료가 어려웠던 케이스가 치료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소아 뇌종양이 양성자 치료에 맞는 질환이듯, 유니티를 통해 치료 횟수를 줄이고 부작용 위험을 낮추는 게 도움이 되는 암 환자가 분명히 있다"며 "더 많은 병원이 도입해 치료 성적을 향상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