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닛케이 "잡스 독창성·혁신보다는 우직함이 성공 열쇠"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사진)가 세상을 떠나면서 IT업계에서는 잡스의 공적을 심층 분석하며 각자 과거를 반성하고, 또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과거 기술 분야의 선두주자였던 일본이 잡스의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남다르다.
일본 최대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관련 특집기사에서 잡스와 애플이 어떻게 소니 등 일본 전자회사들을 제치고 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답은 대체로 알고 있는 독창성이나 혁신이 아니라 다름 아닌 '우직함'에서 찾았다.
◇소니·MS를 제친 애플=애플의 아이폰은 지난 2007년 출시와 함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미 2000년대 전반부터 있었다. 그보다 앞서 199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손끝에 정보'(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를 말하며 손안에서 모든 정보를 다루는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다.
아이패드가 열풍인 태블릿PC도 앞선 것은 MS였다. MS가 펜 터치 방식 패널 태블릿PC의 기본 운영체제(OS)를 출시한 것은 지난 2002년이었다. 애플은 디지털 혁명의 중심에 있었지만 선두는 아니었다.
음악 서비스도 소니가 먼저다. 애플은 지난 2003년 '아이튠 뮤직 스토어'를 통해 음악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소니는 그보다 앞선 지난 1999년에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최고경영자(CEO)가 '브로드밴드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표방하며 같은해 12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음악 서비스를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는 사용자들의 의식과 통신환경, 반도체의 성능이 부족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똑같이 찾아왔다. 소니와 MS는 선구자적 경험을 살려 애플보다 빨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차분하게 단계적으로=애플은 내놓는 제품들마다 연이어 히트를 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애플의 제품 개발 특징은 시간을 들여 차분히 단계를 밟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아이팟의 성공으로부터 아이폰이 태어났고, 아이폰이 히트를 쳤기 때문에 아이패드도 팔린 것이다.
예컨대 아이팟의 첫번째 모델은 지난 2001년 11월 출시됐지만 처음에는 분기당 10만대 전후 밖에 팔리지 않았다. 판매 대수가 100만대를 넘은 것은 작고 싼 '아이팟 미니'를 내놓은 2004년 7월 이후부터다. 첫모델 출시 이후 3년 가까이 걸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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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진화하는 IT 분야에서 3년은 긴 시간이다. 소니는 아이팟처럼 하드디스크구동장치(HDD)를 사용한 워크맨을 2004년 7월 출시하지만 2006년부터 HDD 모델은 신제품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은 지금도 HDD 모델을 내놓고 있다.
애플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반드시 옳다'는 잡스의 신념 때문이다. 최신 모델인 '아이팟 클래식'까지 형태와 조작방법이 거의 바뀌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애플은 또 3년이라는 시간을 제품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보냈다. 최초의 아이팟은 윈도우 기반 PC에 호환되지 않았다. 또 음악을 인터넷에서 팔기 시작한 것도 아이팟 출시로부터 1년 반이 지나서였으며 무엇보다 아이팟은 크고 무거웠다. 애플은 3년 동안 이같은 단점들을 해소해 결국 아이팟 미니를 내놓을 수 있었다.
애플이 왜 처음부터 윈도우와 호환되거나 작고 가벼운 모델을 내놓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잡스도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마케팅 담당자는 "윈도부 버전을 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리도 정말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잡스와 애플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시장 조사 결과 가볍고 싼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첫 모델을 내놓은 지 1년 후부터 아이팟 미니의 개발을 시작했다.
◇30년 계획과 잡스의 세심함=애플은 지난 1997년께 수립한 30년 계획에 따라 제품 개발을 진행시켜 왔다. 여기에는 잡스의 다른 얼굴이 보인다. 대체로 독창성과 혁신을 얘기하지만 장기 비전에 따라 꾸준히 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경영자의 모습이다. 그런 우직한 경영 자세가 바로 애플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예컨대 아이폰 개발에는 2년 반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다. 도중에 아이팟 기능을 탑재한 휴대전화를 모토로라와 공동개발해 판매했지만 히트는 치지 못했다. 아이폰을 차분히 개발을 하는 동안 기존 휴대전화에 단순히 아이팟 기능을 조합해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잡스의 세심함도 애플의 성공 열쇠다. 아이폰은 터치 패널의 활용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것이 대히트로 이어졌다. 1990년대 이후 파이오니아, 샤프, 모토로라 등이 잇따라 터치스크린 휴대전화를 내놨지만 반응이 둔해 사용이 어려웠다. 반면 아이폰은 터치 감지 타이밍과 화면 표시 등을 철저히 갖춰 자연스럽고 편안한 조작을 실현했다.
경영자가 세부적인 것에 꼼꼼하다 보니 제품 수가 적은 것도 애플의 특징이다. 여러 제품을 만들었는데 팔리지 않으면 경영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세부적인 것에만 집착하면 제품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애플이 이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도 잡스가 균형을 잡기 위해 집중력을 안배했다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