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타하리, 당신의 정보를 노린다

21세기 마타하리, 당신의 정보를 노린다

김성휘 기자
2011.10.23 14:39

[글로벌인사이트]잘 키운 산업스파이 1명, 첩보위성 여러 대 안 부럽다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러시아 출신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러시아 출신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또 한 명의 ‘마타하리’가 꼬리를 밟힌 것일까. 영국 정계가 미녀 스파이 스캔들로 발칵 뒤집히면서 스파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런던 이민항소특별위원회 항소심에서 러시아 출신 금발 여성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26)는 자신이 상관으로 모셨던 마이크 핸콕(65) 영국 하원의원과 4년간 내연 관계였음을 시인했다.

카티야란 애칭으로 통했던 이 여성은 지난해 영국 정보당국에 체포됐다. 핸콕 의원을 통해 영국해군 관련 고급정보를 빼내 고국 러시아에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추방령을 받고 항소한 그는 비록 간첩 의혹만큼은 부인하고 있지만 현지에선 그를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미녀 스파이’로 보고 있다.

그동안 스파이 활동은 냉전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세계적 인기를 끈 소설과 영화 시리즈 ‘007’의 주인공도 냉전이라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스파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고 있다.

21세기 첩보전, 경제-사람 중심으로= 스파이들의 전성시대이던 냉전이 끝난 지금도 스파이 활동이 만연한 것은 우선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 질서가 무너진 뒤 오히려 국제 분쟁과 갈등이 늘었기 때문. 각국의 외교전이 치열해지면서 정보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또 국제질서의 무게중심이 경제로 이동하면서 정부기관뿐 아니라 기업과 같은 민간부문으로도 스파이 영역이 넓어졌다. 정보가 곧 경쟁력이며 나아가 기업의 운명을 가를 요소라는 인식에 상대방의 첨단기술과 기업 정보를 노리는 산업스파이 활동이 부쩍 늘었다.

21세기 스파이 활동이 20세기와 달라진 것은 위성과 첨단장비를 활용하는 전자 정보전, 이른바 엘린트(ELINT= Electronics Intelligence)보다 사람에 의한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따로 있고 이 경우 유능한 스파이 1명은 초정밀 첩보위성 여러대보다 나은 정보력을 과시할 수 있다.

이번에 영국에서 적발된 자툴리베테르 또한 군사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이용해 ‘맨투맨’ 방식으로 정보를 얻었다. 도청 장치를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도 이런 추세를 부추겼다.

이 같은 휴민트 스파이 활동은 종종 외교 갈등으로 비화한다. 외교관 맞추방 사태가 대표적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1년 3월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외교관 50명씩을 맞추방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로버트 한센이 실은 18년간 러시아의 스파이였음이 발각됐기 때문. 미국은 레이건 정부 시절 1986년에도 당시 소련 외교관 80명을 추방한 바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6월 리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 소속 국가정보원 요원이 정보활동을 벌이다 현지 정부로부터 ‘페르소나 논 그라타’, 즉 기피인물로 지정당해 추방됐다. 당시 우리 정부는 성난 카다피 정권을 달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한국은 1998년 7월엔 러시아와 외교관 맞추방 사태를 빚기도 했다.

적대국뿐 아니라 우방 간에도 스파이 경쟁은 치열하다. 최근 중국과 북한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북한은 중국 측의 정보활동을 지극히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프랑스는 자국에서 CIA의 첩보활동을 적발해 파리 주재 미 외교관 5명을 추방했다.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 뒤 러시아에서 유명인사가 된 안나 채프먼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 뒤 러시아에서 유명인사가 된 안나 채프먼

스파이 천국 러시아? 이제는 중국= 지난해 6월 미국에서도 러시아 출신 미녀 스파이 사건이 떠들썩했다.

이혼 경력이 있는 20대 여성 안나 채프먼은 낮엔 온라인 부동산회사 경영자로 활동하고 밤엔 사교계에 이름을 알렸는데 그가 실은 미국 기밀을 러시아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경제학 석사의 해박한 지식, 외국어 능력, 이국적 매력이 그녀의 무기였다.

이처럼 서방에선 종종 러시아 스파이 사건이 제기된다. 그러나 러시아만 스파이를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마치 스파이의 천국처럼 알려진 것은 냉전기부터 이어진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에다 미녀 스파이라는 소재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산업 스파이가 늘어난 요즘 러시아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중국이다. 선진국들은 중국 산업 스파이를 크게 경계하고 있으며 중국인 스파이가 적발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7월 미 곡물회사 카길과 다우 아그로사이언스에서 일했던 중국 출신 연구원이 회사 기밀을 중국에 넘긴 혐의로 체포됐다. 미 법원은 지난 19일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중국 출신 미국 이민자가 모토로라 기술자로 일하며 액정기술 관련 문서를 빼돌리려다 연방수사국(FBI)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스파이들의 정보입수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졌다. 통제된 공간에 몰래 잠입해 문서를 입수하거나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남성 공직자와 정치인에게 접근하는 미인계는 고전에 속한다.

경영 컨설팅이나 기술 자문 등 합법적 형태로 접근, 감쪽같이 정보를 빼내기도 한다.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있으니 상대방으로선 스파이에게 당한 사실을 인지조차 못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킹도 신종 스파이 방법으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스파이로 규정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쿠퍼스하우스(PwC)는 전세계에서 체포되거나 적발돼 세상에 알려진 스파이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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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국제부장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유니콘팩토리) 김성휘입니다. 국회/정당/청와대를 담당했고(정치부) 소비재기업(산업부), 미국 등 주요증시/지정학/국제질서 이슈를(국제부) 다뤘습니다. EU와 EC(유럽연합 집행위),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등을 경험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씬 전반, 엔젤투자, 기후테크 등 신기술 분야를 취재합니다. 모든 창업가, 기업가 여러분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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