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공화당 롬니 150년전 '911' 극복할까

[광화문]공화당 롬니 150년전 '911' 극복할까

지영한 국제경제부장
2012.01.17 14:37

2001년 9월11일 아침,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플로리다주 엠마 E.부커 초등학교의 읽기수업을 참관중이었다. 부시는 테러 소식을 접한 순간, 감히 미국이 공격받았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분노'와 '보복'부터 생각났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부시는 이어 자신이 교실을 황급히 뛰쳐나가면 아이들이 겁먹고, 미국 전역이 패닉에 빠질 것 같아 수업은 그대로 진행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테러를 보고 받던 부시가 너무 태연하게 보였다는 이유로,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는 겉으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누구 짓이지?' '피해가 얼마나 되나?' '정부는 뭘 해야 하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에 마음은 교실에서 멀찌감치 달아나 있었다고 밝혔다.

수업이 끝나 대기실로 돌아온 부시는 2번째 비행기가 무역센터 남쪽 타워에 충돌하는 슬로우 모션 장면을 그야 말로 '경악 속에서' 지켜봤다고 회상했다. 당시 기자도 TV로 테러를 접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당사자인 미국 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충격은 오죽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역사에는 또 다른 '911'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부터 한 세기 반 전인 1857년 9월11일, 미국 건국 이래 가장 잔혹한 민간인 학살이 솔트레이크시티 인근 '마운틴 메도즈'에서 일어났다. '마운틴 메도즈 학살'은 과거 미 대륙에서 빈번했던 백인과 인디언 간의 살육이 아닌 백인들 사이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이란 특징이 있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솔트레이크시티는 모르몬교 본산으로도 유명하며,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마운틴 메도즈는 서부 개척시절 '꿈의 땅'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던 마차행렬이 꼭 지나가야 하는 길목 중 하나였다.

당시 미국 연방 정부와 모르몬교는 긴장상태가 빠져있었는데, 서부로 향하던 이주민 마차행렬이 하필이면 이 때 마운틴 메도즈를 지나다 모르몬교도에게 공격을 받았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120명이나 죽임을 당했다. 일부는 목이 잘리고, 머리 가죽도 벗겨져 처음에는 인디언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조사결과 모르몬교 장로인 존 D.리가 이끄는 일단의 모르몬교도들이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존 D.리는 유죄가 확정돼 사형에 처해졌다.

'마운틴 메도즈 학살'을 계기로 미국의 개신교 주류는 모르몬교를 더욱 이단시했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르몬교에 대한 편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좋은 예일 것이다.

롬니는 전국적으로 안정적인 지지도를 얻고 있는데다 얼마 전 오하이오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승을 거머쥐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모르몬교라는 사실이 약점이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며칠 전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표면적으론 샌토럼이 '보수'를 잘 대변할 것이란 이유를 댔지만 모르몬교도 보다는 차라리 가톨릭 신자인 샌토럼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개신교가 주류인 미국에서는 가톨릭도 오랜 동안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왔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존 F. 케네디조차도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 대통령 선거에서 엄청난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롬니가 '마운틴 메도즈'의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케네디 신화'를 다시 써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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