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보이는 이유가 너무 좁다…미국 경제 위기론의 실체

강해 보이는 이유가 너무 좁다…미국 경제 위기론의 실체

김하늬 기자
2026.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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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미국 경제는 숫자상으로는 침체와 거리가 있다.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확정치 기준 1분기 성장률은 연율 2.1%였고, 실업률은 5월 기준 4.3%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월가와 정책 당국의 시선은 지표 아래 숨겨진 구조를 향하고 있다. 이들의 지적은 미국 경제가 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성장을 떠받치는 축이 소수에 집중돼 있고, 그 소수의 부(富)가 다시 소수의 자산 가격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2월 14일: 한 고객이 에르메스 매장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 파리에 본사를 둔 에르메스는 2024년 4분기에 호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AFPBBNews=뉴스1
2025년 2월 14일: 한 고객이 에르메스 매장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 파리에 본사를 둔 에르메스는 2024년 4분기에 호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AFPBBNews=뉴스1

숫자가 이를 보여준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추정으로 1분기 성장률 2.1% 가운데 약 4분의 3이 AI 관련 투자에서 나왔다. 기업투자의 성장 기여도(1.48%포인트)가 사상 이례적으로 소비(1.08%포인트)를 앞질렀다.

이 구조를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것은 블리클리 파이낸셜 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피터 부크바다. 그는 미국 경제가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개의 기둥 위에 올라앉아 있다고 봤다. 고소득층 소비, AI 관련 자본지출과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정부 지출이다. 기둥 하나가 쓰러지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이 기사는 세 번째 기둥을 고용 측면에서 바라보아 헬스케어 고용으로 짚는다. 헬스케어 고용의 팽창이 메디케어·메디케이드라는 정부 재정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두 프레임은 결국 같은 뿌리를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고소득층 소비, AI 투자, 헬스케어 고용이라는 세 축이 분리된 위험이 아니라 하나의 사슬로 엮여 있다는 점이다. 개별 현상으로 보면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JP모건 글로벌 리서치는 2026년 전망 보고서에서 이를 '다차원적 양극화'로 규정했다. 보고서를 쓴 두브라브코 라코스부야스 글로벌 시장전략 총괄은 "이미 건강하지 않은 K자형 경제 안에서 AI가 이 양극화를 한층 더 증폭시킬 수 있다"며 "시장 집중도가 새로운 최고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첫 번째 기둥…상위 20%가 떠받치는 소비

미국 소비의 중심은 고소득층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가 지난달 공개한 2026년 1분기 추정치에 따르면 연소득 17만5000달러를 넘는 상위 20% 가구가 미국 전체 개인지출의 60% 가까이를 차지했다. 증가율 격차도 벌어졌다. 상위 20%의 지출은 1년 사이 6.5% 늘어난 반면 하위 80%는 2.6% 증가에 그쳐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쳤다. 하위 80%의 소비 증가는 식료품, 임대료, 보험료, 이자비용 같은 필수지출 중심이다. 명목 소비가 늘었다고 생활 여력이 개선됐다는 뜻은 아니며, 물가와 고정비를 따라가기 위한 방어적 지출에 가깝다는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연구팀 '리버티 스트리트 이코노믹스'가 5월 발간한 ' K자형 경제 추적: 누가 소비를 주도하는가?' 리포트 속 미국 실물사치품 누적 성장률그래프/사진=뉴욕연방준비은행 사이트
뉴욕 연방준비은행 연구팀 '리버티 스트리트 이코노믹스'가 5월 발간한 ' K자형 경제 추적: 누가 소비를 주도하는가?' 리포트 속 미국 실물사치품 누적 성장률그래프/사진=뉴욕연방준비은행 사이트

무디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마크 잰디는 "미국 경제가 부유층의 등에 좁게 올라앉아 있다"며 "부자는 더 번영하고 나머지는 뒤처지는 K자 경제가 여전히 굳건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자들이 돈을 계속 쓰는 한 경제는 침체를 피하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 경제는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5월 1일 공개한 분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연소득 12만5000달러를 넘는 고소득 가구의 실질 소매지출(자동차 제외)은 2023년 1월 이후 2026년 3월까지 누적 약 7.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간소득 가구는 약 3%, 연소득 4만 달러 미만 저소득 가구는 1%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다. 팬데믹 이전에는 저소득층의 소비 증가율이 부유층을 앞질렀지만, 팬데믹기 보조금이 소진된 2023년을 기점으로 구도가 뒤집혔다. 뉴욕 연은 연구진은 "단일 소득 집단에 대한 의존은 지출 성장의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취약성, 정책적 함의에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소비 집중 자체보다 그 배경이다. 뉴욕 연은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상위 1% 가구의 실질 순자산은 25% 이상 불어난 반면 중간 40% 가구는 10% 미만 증가에 그쳤고, 이 격차는 대부분 금융자산 가격 상승에서 나왔다. 연구진은 "금융자산의 압도적 역할은 금융시장 조정 국면에서 소매지출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의 엔진이 임금이 아니라 자산가격이라는 뜻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연구팀 '리버티 스트리트 이코노믹스'가 5월 발간한 ' K자형 경제 추적: 누가 소비를 주도하는가?' 리포트 속 미국 K자형 경제 추이 그래프/사진=뉴욕연방준비은행 사이트
뉴욕 연방준비은행 연구팀 '리버티 스트리트 이코노믹스'가 5월 발간한 ' K자형 경제 추적: 누가 소비를 주도하는가?' 리포트 속 미국 K자형 경제 추이 그래프/사진=뉴욕연방준비은행 사이트

다만 K자의 '기울기' 자체는 논쟁 중이다. 미니애폴리스 연은은 이용 가능한 공공·민간 데이터를 비교한 리뷰에서, 2020년 이후 명목 지출 증가율이 저소득층 29%, 고소득층 36%로 무디스가 보고한 상위 10%의 62%보다 훨씬 완만하고 계층 간 격차도 촘촘하다고 지적했다. K자형 소비의 강도는 데이터셋과 기준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잰디 본인도 방법론 비판을 인정하며 자신의 추정이 "과장됐을 수 있다"면서도 K자형 구조 자체는 확고하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AI 자본지출의 양면성

두 번째 축은 AI 자본지출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투자를 넘어 데이터센터, 반도체, 서버, 전력 인프라, 부동산, 유틸리티, 채권시장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투자 사이클이다.

JP 모건이 발간한 '2026년 투자전망' 리서치 보고서에 포함된 삽화. AI가 관세, 부채, 인플레이션 등을 등에 엎고 있는 모습/사진=JP모건 홈페이지
JP 모건이 발간한 '2026년 투자전망' 리서치 보고서에 포함된 삽화. AI가 관세, 부채, 인플레이션 등을 등에 엎고 있는 모습/사진=JP모건 홈페이지

AI 자본지출(CAPEX) 규모는 기관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급증세라는 방향은 일치한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2026년 한 해 7650억 달러, 2026~2031년 누적 7조6000억 달러의 AI 관련 자본지출을 전망했다. JP모건 글로벌 리서치는 지난달 발간한 2026년 중간 전망에서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지출이 2026년 6500억 달러에 이르고 2027년에는 1조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으며, 2030년까지 글로벌 AI·데이터센터 투자 누적 규모를 5조5000억 달러로 상향했다. 실제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메타·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1분기 실적 공시를 종합하면 올해 투자 계획은 약 7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AI 투자 붐은 주식시장과 소비를 동시에 자극한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가 지난 2월 발간한 '2026 미국 시장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매그니피센트 7'을 비롯한 대형 기술주 시가총액이 2025년 한 해 약 3조8000억 달러 불어나면서 가계 금융자산 가치가 높아졌고, 이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소비로 이어졌다. 팬테온은 이 같은 주식자산 증가가 2025년 4분기 소비 증가율을 약 0.4%포인트, 같은 기간 GDP 성장률을 약 0.3%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AI 투자가 설비투자 경로로 성장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빅테크 주가 상승이 고소득층 소비 여력을 키우는 간접 경로로도 경기를 지지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이 생긴다. AI 투자는 실물투자이지만 동시에 주가와 기대의 산물이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예상대로 늘면 투자 사이클은 정당화되지만, 수익화가 늦어지거나 자금조달 비용이 오르면 시장은 같은 투자를 과잉투자로 재평가할 수 있다. JP모건은 자사 AI 투자 모델에서 10% 수익률을 내려면 2030년까지 연간 약 6500억 달러의 매출이 영구적으로 필요하다며, 이는 "모든 아이폰 사용자가 매달 34.72달러를 내는 것과 같은 규모"에 빗댔다. AI 투자 확대가 빅테크 주가 상승으로, 다시 고소득층의 자산효과와 소비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형성된 만큼, AI 기대가 꺾이면 충격은 설비투자뿐 아니라 증시와 소비 경로를 통해 동시에 확산될 수 있다.

MRB파트너스는 AI 관련 요소가 2025년 1~3분기 평균 실질 GDP 성장의 약 0.9%포인트, 전체 성장의 40% 미만에 그친다고 분석하며 'AI가 성장 대부분을 설명한다'는 서사에 제동을 건다. 하지만 이 분석조차 AI의 경기 기여가 상당하다는 점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헬스케어 고용이 가리는 노동시장

세 번째 축인 헬스케어 고용은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1월 신규 고용 13만 개 중 8만2000개(63%)가 헬스케어에서 나왔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수석이코노미스트 집계로는 2025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1년간 헬스케어 신규 고용이 43만6000개로, 같은 기간 전체 순고용 증가분의 121%에 해당한다. 헬스케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 전체는 순감소였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헬스케어가 없었다면 미국 고용시장은 이미 훨씬 약해 보였을 것이다. 둘째, 헤드라인 고용지표가 경기 둔화 신호를 늦게 보여줄 수 있다. S&P글로벌은 지난 2월 리포트에서 2025년 헬스케어가 월간 고용 증가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지만, 2026년 들어 비용 압박과 연방 의료 프로그램 삭감, AI 자동화가 채용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헬스케어 고용이 노동시장 둔화를 완충하면서 침체 신호가 지연돼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비용 경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헬스케어 고용 팽창의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와 통원·재택의료 전환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있지만, 이 성장은 자기잠식적이다. 인건비는 의원 운영비의 84%, 병원 운영비의 56%를 차지한다. 헬스케어 고용이 늘수록 의료비가 오르고, 그 비용은 보험료, 본인부담금, 기업 복리후생비, 정부 재정을 통해 다시 가계와 기업으로 돌아온다. 중하위층은 식료품과 임대료에 더해 의료비 부담에도 눌린다. 헬스케어 고용은 노동시장의 안전판인 동시에 경제 전반의 체감경기를 갉아먹는 이중적 역할을 하는 셈이다.

흔들리는 기둥, 정량화할 수 없는 위험

(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2026.6.17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2026.6.17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세 축을 잇는 사슬을 도식화하면 'AI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 → 상위 소득층의 자산 증가 → 이들의 소비 확대'라는 도미노 구조다. 팬데믹 이전에는 저소득층의 지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역전은 경기 하강기에 소비가 얼마나 빠르게 꺾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위험 신호로 읽힌다.

연준의 금융안정보고서는 자산시장 전반의 고평가 위험을 더 구체적으로 짚었다. 연준은 주요 자산 가격이 역사적 기준 대비 높은 수준이라며, 경기 둔화나 투자심리 악화 시 가격 조정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사모신용 시장은 공개시장보다 가격과 손실이 늦게 드러나는 구조라 표준적 부도지표만으로는 누적된 스트레스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부 위험에 대해 "정량화하기 어렵고 현재 분석틀로는 포착되지 않는다"고 밝힌 대목은, 취약성이 존재하지만 그 규모와 파급 경로를 정확히 재기 어렵다는 의미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가 지난 2월 발간한 '2026 미국 시장 모니터' 보고서에 삽입된 메그니피센트7와 S&P지수의 주당 순이익 차이 그래프/사진=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가 지난 2월 발간한 '2026 미국 시장 모니터' 보고서에 삽입된 메그니피센트7와 S&P지수의 주당 순이익 차이 그래프/사진=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시장 집중도는 이미 수치로 드러난다. JP모건에 따르면 2022년 챗GPT 출시 이후 S&P500 수익률의 75%, 기업 이익 증가분의 80%, 자본지출 증가분의 90%가 AI 관련 기업에서 나왔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2018년 3조 달러에서 최근 18조 달러로 6배 불어났다. 미국 경제가 AI 기업만으로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지만, 시장 수익률과 기업투자의 한계 증가분이 특정 테마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임금 성장률의 계층 간 격차가 K자형 경제의 근본 원인이며 단기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2026년 세금 환급액이 전년 대비 약 650억 달러(18%) 늘어 일시적 부양 효과를 낼 수는 있다. S&P도 신중론이다. K자형 소비의 증거는 있지만 시장이 말하는 만큼 극단적 변화는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실질 소비 증가율이 2026년 2.1%, 2027년 1.8%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소비는 여전히 크고, 노동시장은 아직 완전히 꺾이지 않았으며, AI 투자는 실제 설비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핵심 질문은 남는다. 소비 집중이 자산가격에 얼마나 내생적으로 연동돼 있는지, 자산가격 조정 국면에서 그 집중이 얼마나 빠르게 해체될 수 있는지가 미국 경제 위기론의 본질이다. 지금의 위기론은 "침체가 임박했다"는 단정이 아니라 "성장의 기반이 좁아졌다"는 진단에 가깝다.

한국에 주는 신호

미국의 논쟁은 한국에도 시사점이 있다. 한국은 미국처럼 주식 중심 자산효과가 압도적인 구조는 아니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훨씬 크다. 그러나 소수의 기업이 수출·증시·투자심리를 동시에 떠받친다는 점에서 구조는 닮았다. 미국에 하이퍼스케일러가 있다면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개장 후 시황과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주가가 나오고 있다. 2026.6.19/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개장 후 시황과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주가가 나오고 있다. 2026.6.19/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2026년 7월 현재 한국 경제의 표면 지표는 강하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6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한 1022억5000만 달러로 사상 처음 월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독일·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다. 무역수지도 361억5000만 달러 흑자로 처음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견인차는 반도체였다. 반도체 수출은 448억2000만 달러로 199.5% 급증하며 사상 처음 월 400억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숫자를 한 겹 벗기면 미국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성장을 떠받치는 기반이 얼마나 넓은가.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1.8% 성장해 5년 6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한은 추산으로 그 증가분의 약 55%가 반도체 제조업에서 나왔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1.1%포인트)가 내수(0.6%포인트)를 앞섰다.

수출 구조의 쏠림은 더 가파르다.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24%였던 반도체 비중은 올해 상반기 38%까지 올라섰다. 상반기 반도체 수출 1924억 달러는 지난해 연간 실적(1734억 달러)을 반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추정으로 AI 관련 투자가 1분기 미국 성장의 약 4분의 3을 설명한다면, 한국은 반도체 하나가 성장의 절반 이상을 설명한다. 착시의 구도가 같다.

증시의 쏠림은 더 선명하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은 지난 6월 22일 코스피 시총 순위까지 바꿔놨다. 이날 종가 기준 SK하이닉스 시총은 2080조3782억원으로 삼성전자 보통주(2066조6594억원)를 처음 넘어섰다. 삼성전자가 2000년 11월 이후 약 25년 7개월간 지켜온 자리다. 우선주를 포함한 삼성전자 전체 시총(약 2246조원)은 여전히 앞서지만, SK하이닉스 한 종목이 이날 코스피 전체 시총의 24%를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이다. 두 반도체 기업을 빼면 코스피 랠리의 절반은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질문은 K자형 경제가 진짜냐 아니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소비와 투자가 얼마나 자산가격에 내생적으로 묶여 있느냐다. 자산가격이 10% 조정될 때 상위층 소비가 얼마나 빨리 줄어드는가. 하위 80%는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 AI 투자 둔화가 주가와 기업이익, 고용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이되는가. 한국으로 치환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HBM 수요와 메모리 가격이 꺾일 때, 수출의 38%와 성장의 55%와 증시의 절반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무엇이 완충재 역할을 하는가.

지금 미국 경제는 약해서 위험한 것이 아니다. 강해 보이는 이유가 너무 좁아서 위험하다. 부크바의 '세 기둥'은 그 좁아진 기반을 보여주는 시장의 언어다. 무디스의 '도미노' 경고는 그 기반이 무너질 때 충격이 어떻게 전파될지를 보여주는 경제학자의 언어다. 두 진단이 만나는 지점은 하나다. 성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점점 더 적은 자산, 적은 기업, 적은 소비자에 기대고 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핵심 질문도 같다.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성장을 떠받치고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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