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희귀병 유전자 치료 임상시험에 참여한 6세 여아가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가 규제기관의 승인 없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중국식 임상 허가절차가 문제였을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떤 조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모가 약 12억원 규모의 임상시험 비용을 부담했단 점도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30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2025년 3월 발생했다.
사망한 여아 메이(가명)는 CHD3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희귀 신경발달질환인 '스나이더스-블록-캄포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발달지연과 언어장애, 지적장애 등을 동반하지만 일반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의 아버지는 2023년 상하이교통대 의학원 뇌과학 연구자인 추쯔룽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맞춤형 유전자 치료를 요청했다.
2025년 3월 상하이 신화병원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IIT)'가 진행됐다. 연구팀은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를 이용해 유전자 편집기를 뇌척수액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뇌 속 CHD3 유전자를 교정하려 했다. 성공했다면 세계 최초의 뇌 직접 표적 유전자 편집 치료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는 치료 후 며칠 만에 강한 면역반응과 혈전성 미세혈관병증이 발생했고 결국 숨졌다.
사건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지난 23일이다.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와 연구윤리 전문매체 리트랙션 워치가 공동조사를 통해 메이의 사망 경위와 임상시험 과정을 공개했다. 상하이교통대 의학원은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개된 임상 관련 자료는 논란을 키웠다. 메이의 임상 전에 진행된 원숭이 독성시험에서는 실험에 사용된 원숭이 4마리 모두에서 중등도 이상의 간 손상이 확인됐고 고용량을 투여받은 개체에서는 신장 손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에도 메이의 임상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고용량 AAV를 뇌척수액에 직접 투여한 것이 치명적인 독성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메이의 사망 이후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팀은 연구를 계속 진행했고 연구 결과는 일부 내용이 수정된 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하지만 논문에는 원숭이 독성시험 결과와 메이의 사망 사실이 포함되지 않았단 점이 확인됐다.
메이의 부모가 약 12억원을 부담해 임상을 진행했단 사실도 공개됐다. 중국 희귀질환 환자 지원 비영리단체인 병통도전재단의 왕이오우 이사장은 "연구자가 '시장성이 없어 연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환자 가족은 공정한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며 "부모는 돈을 냈고 아이는 위험을 감수했지만 정작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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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신은 메이가 참여한 연구자 주도 임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연구자 주도 임상은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일반 신약 임상과 달리 대학병원이나 연구기관의 의사가 직접 기획하고 수행하는 임상연구다. 특히 중국에서는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의 임상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병원 학술위원회와 윤리위원회 심사만으로도 임상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치료법을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지만 병원 자체 심사가 사실상 마지막 안전장치인 셈이다.
스자유 중국인민대 법학원 교수는 차이신을 통해 "메이가 앓던 질환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 아니었기에 기대할 수 있는 치료 효과와 감수해야 할 생명 위험이 명백히 비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이 자체적으로 임상 진행을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원숭이 독성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임상을 강행을 결정한 것 역시 연구자 주도 임상 특유의 '속도전' 탓일 수 있단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스 교수는 "원숭이 독성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했다면 임상을 중단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네오랜드 바이오사이언스의 왕하오란 최고경영자(CEO)는 SCMP를 통해 "일부 연구자들이 연구비 확보와 국가 프로젝트 선정 등을 위해 지나치게 빠르게 임상 데이터를 만들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연구책임자가 해결되지 않은 과학적 문제들이 많았음에도 성급하게 임상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왕 CEO는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연구자 주도 임상 시스템이 장기적 영향을 받지 않길 바란다"면서도 "하지만 규제가 급격히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