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8년 2월 13일 정오, 영국 상원의원들이 행렬을 이뤄 웨스트민스터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의사당 밖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동인도회사의 벵골 총재로서 인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인물에 대한 탄핵 재판을 보기 위해 그곳에 모였다. 이는 영국 국가가 마침내 힘을 과시하며 당대 최고 기업 올리가르히, 말하자면 18세기 런던의 일론 머스크와 맞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약 170명의 상원의원 외에도 판사와 변호사, 수많은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재판 개정 당시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기록에 따르면, 왕비는 "황갈색 새틴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 장식은 소박했고 아주 살짝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박혀 있었다." 왕비는 세 자녀와 함께 방청석에 자리했다. 상원의장으로 재판을 주재한 에드워드 설로(Edward Thurlow)는 당시에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다음 말로 이 재판의 핵심을 요약했다. "기업에는 처벌할 육체도, 단죄할 영혼도 없다. 따라서 기업은 제멋대로 행동한다."
우리는 여전히 영국이 인도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1756년부터 1803년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정복한 주체는 국민국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인 동인도회사였다. 런던의 작은 사무실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주주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동인도회사가 처음에는 향신료 무역에, 이후에는 인도산 직물 수출에 주력했지만, 회사는 처음부터 특허장(charter)을 통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통치하며 전쟁을 벌일 권한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다. 1601년 첫 항해 때부터 이 회사는 사업을 수행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1788년에 이르러 동인도회사는 단순히 영국 최대의 기업이자 최대 고용주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했던 나라, 즉 무굴제국의 인도를 정복한 회사였다. 보석으로 가득한 그곳의 약탈품은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동력을 제공했다.
제국주의 역사의 많은 사례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상업과 식민지화, 기업의 무자비한 권력은 보조를 맞춰 함께 움직였다. 톨스토이는 훗날 간디가 공개한 서한에서 "한 상업회사가 2억 명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한 나라를 노예로 만들었다"고 썼다. 이 모든 것이 동인도회사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빅테크 역시 주권국가의 속성을 띠기 시작했고, 여러 면에서 이제 전성기의 동인도회사만큼이나 강력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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