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용 AI'는 세계에서 가장 따분한 AI 전략들의 단골 구호다. AI 정책에 발을 들이는 제조업 강국들은 조만간 모두 똑같은 발상에 도달하곤 한다. 자국의 기존 제조업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병목 구간을 이루고 있으며 독보적 가치가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결국 한국의 재벌이든 독일의 완성차 업체든 늘 지켜오던 기존 대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의 AI 정책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기이할 정도로 편리한 결론이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산업 자산은 실제로 AI 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AI 분야에서 계속 독주하리라고 본다면 미국이 앞으로도 자국을 필요로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견국이 보유할 수 있고 미국이 필요로 할 만한 상호보완적 자산을 찾아보면 제조업이 단연 최우선으로 꼽힌다. '데이터센터 안의 천재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현실세계의 가치로 전환하려면 미국에도 제조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예고되어 온 AI의 응용분야 상당수는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암 치료제, 극초음속 미사일,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 그렇다.
제조업 역량을 제공할 수 있는 동맹국은 그 대가로 AI가 주도하는 성장의 과실을 일부 확보하고 미국 AI 산업에 대해 협상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포스트 AI 시대에 전략적으로 안정된 서방 동맹을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바람직한 산업용 AI를 실현하려면 두 가지 실패 유형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오만이다. 자국 산업의 역량을 대폭 끌어올려 줄 미국산 AI 모델 없이도 독자생존할 수 있다고 믿다가 뒤처져 경쟁에서 도태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순진함이다. 미국 기업들을 불러들였으나 그들이 필요한 것만 챙겨 산업을 미국 본토로 리쇼어링하고 결국 쓸모가 없어진 동맹국을 버리는 상황이다. 이를 제대로 해내려면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연구개발(R&D) 촉진 효과를 누릴 만큼 자국 산업을 미국의 AI와 통합하되, 산업기반이 공동화되어 미국 남부 공업지대인 선벨트로 통째로 넘어가지 않을 만큼은 보호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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