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기업의 역량이 커진데다 각종 자유무역협정으로 정부의 개입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산업정책 무용론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외 산업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양쪽 주장이 모두 옳다.
산업정책의 본질은 산업 활동의 주체인 기업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줄여줌으로써 이들이 보다 과감히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문제는 시대에 따라 위험의 원천이 바뀐다는 것이다. 1960~70년대에는 부족한 자본을 어떻게 획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시기 산업정책은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저리에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적극적인 외자 도입, 소비 억제 및 저축 장려, 각종 정책자금 지원 등이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에는 기술 개발이 제1 과제로 부상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자본에만 의존하는 산업 발전 패턴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정책 역시 기술혁신과 신기술 개발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1985년 1.5%에 머물던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1990년 1.9%로 높아진 데 이어 1995년 2.5%, 2000년 2.9%로 꾸준히 상승해 왔다. 정부는 앞으로 R&D 투자비율을 3%대로 올려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기술 개발보다 시장을 제대로 형성하거나 확대하지 못하는 것이 기업들에 더 큰 위험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짧아지는 기술 및 제품 수명주기, 첨단 신기술이나 융합형 신기술의 사업화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각종 법제, 새로운 사업모델의 불확실성 등으로 뛰어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제대로 된 시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산업정책도 시장의 위험을 줄여 기업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서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의 PICK!
법제의 수정과 규제 완화를 통해 의료, 교육, 노인복지 등 각종 사회성 서비스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새로운 융합형 산업이 뿌리내릴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태양전지, 연료전지, 로봇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분야의 경우 기술 개발 지원보다 정부 조달, 정책보조금 지급, 인프라 구축 등의 방법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시장을 키우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는 공공서비스의 민간 개방, 신산업·신시장 육성을 위한 행정여건 조성 등을 통해 복지분야의 산업화에 산업정책의 초점을 맞추었으며, 2004년 이후에는 교육, 노동, 의료 등을 개혁하면서 민간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동시에 각종 규제 완화로 M&A를 활성화함으로써 기업들이 융합형 산업에 능동적으로 진출하거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의 시장 창출을 위해 정부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동안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시장을 키워온 태양전지의 경우 코스트가 이미 정책 목표수준을 상회하면서 보조금을 없앤 상황이다.
만일 정부의 산업정책이 이와 같은 국내외의 상황 변화를 도외시한 채 과거와 같이 자본의 축적이나 공급, 기술 개발 지원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책무용론이 옳은 주장이 될 것이다. 반면 환경 변화에 맞춰 기업들이 직면한 위험을 인식하고 이를 줄여주는 방향으로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정부의 역할확대론이 보다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