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 Life] 메르레세데스-벤츠 Vision R63 AMG와 함께 한 지상비행
이따금 정의는 내용을 규정한다.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가 현실의 행동반경까지 제약하는 식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그렇다. 모델간 비교를 위해 설정해 놓은 차급을 신차를 위한 기준으로 이용한다. 소비자들의 선호가 형성되면 일제히 그 기준에 재원을 맞춘다.
하지만 창조적인 개척자는 영역을 파괴한다. 불필요한 제약에는 거리낌이 없다.
또 한번 영역은 파괴됐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CLS클래스를 선보이며 세계최초 4도어 쿠페라는 새로운 개념(기존 쿠페는 2도어)을 만들어 내더니 이번엔 수퍼RV(레저차량)를 내놓았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통해 AMG버전으로 소개됐던 Vision R63 AMG. 소개당시에는 튜닝 컨셉트카 정도로 분류됐지만 최근 양산이 시작됐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R클래스의 성능을 양산가능한 최고 수준으로 극대화한 모델이다. 벤츠의 고향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난 이 차는 첫 느낌부터 범상치 않았다.

◇온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스포츠카(?)
시승차량은 R63 AMG 롱휠베이스. 이 차는 세그먼트(차급) 영역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경쟁사에서 이 같이 독특한 차량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 휠베이스 3215mm(숏바디 2980mm), 전장 5157mm(숏바디 4922mm), 전폭 1922mm, 전고 1634mm.

차량재원만 살펴보면 세단과 SUV의 장점을 합하고 탑승인원을 6명 이상으로 늘린 가족형 차량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모델은 영역구분이 모호해 크로스오버다목적차량(CUV)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그런데 실제로 대면해보니 차량은 겉보기부터 예상과는 다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먼저 이중으로 구분돼 커다란 눈동자를 껌뻑이고 있는 헤드라이트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옆에서 보면 요즘 유행하는 스포츠형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맑고 큰 눈망울이 신뢰감을 준다. 사나운 맹수가 아니라 날렵하고 충직한 수리부엉이 같다.
특히 보닛을 중심으로 V자 형태로 모아지다가 라디에이터그릴 부근에서 다부진 U자로 바뀌는 전면부는 벤츠만의 격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스포티함을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차의 개성과 회사 이미지를 가미한 설계가 성공적인 프론트 마스크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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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에어댐퍼(공기흡입구)는 3개 영역으로 구분돼 역동성을 더한다. 아우디의 싱글프레임만큼 인상적이면서도 벤츠 고유의 품위를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전체적인 몸매도 미니밴이라고 부르기가 미안할 정도로 잘 빠졌다. 전장(5157mm)은 숏바디보다 23.5cm 길다. 뉴 카니발(4810cm)보다는 무려 34.7cm나 길다. 이렇게 듬직한 체구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어떤 포즈에서도 섹시함을 느끼게 한다.
엔진룸부터 맨뒷자석까지 이어지는 3박스 타입. 그러나 후면부가 흡사 쿠페처럼 마무리돼 속도감이 느껴진다.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은 탄력있게 올라붙은 엉덩이와 조화를 이룬다. 특히 외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크롬 도금 트윈 머플러는 이 차 디자인의 백미다.
◇최고출력 510마력..성능과 안전에 집중한 매커니즘

설레이는 마음으로 운전석에 올랐다. 출발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이나믹한 외관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 역시 스포츠카와 같은 수준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파 가죽(최고급 새끼양 가죽)으로 만들어진 AMG 스포츠 시트. 앉자마자 몸에 감기는 느낌이다. 검은색 알루미늄 트림(장식)과 AMG의 레이스타이머 계기판 역시 기분을 들뜨게 한다.
수리부엉이에 기대를 걸고 조심스럽게 출발을 청했다. 엑셀에 오른발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AMG 모델 특유의 으르렁거림을 내뿜는다. 모델명에 붙은 63은 6.3리터 V8엔진을 의미한다. 이 엔진이 내뿜는 최고출력은 510마력(6800 rpm), 최대토크는 64.2kg.m(520 rpm). 최근 출시돼 힘이 좋다는 국내 승용차 소나타 디젤모델(146마력)보다 3배 이상 힘이 세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성능이다.

강철심장은 육중한 몸(2950kg)을 가뿐하게 움직이게 했다. 엑셀은 즉답식이 아니었지만 2단계로 나뉘어 단계별로 움직임을 다르게 한다. 동승한 벤츠 관계자는 "뒷좌석 승객들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저속에서는 차체가 급격한 움직임에 쏠리지 않도록 조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적한 독일 농촌의 시골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부드럽게 올라탔다. 스티어링휠(운전대)에 달린 패들시프트(경주 차량용 기어변속기)를 이용해 수동으로 기어를 조작하면서 출력을 높이자 차량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달아오른 엔진이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1초. 차선을 변경해 아우토번 1차선에 올랐다. 질주가 시작됐다.

속도는 어느새 시속 180km를 넘어섰다. 그러나 체감시속은 100km 정도다. 20인치(옵션 21인치)까지 확대된 알루미늄 휠은 5개의 스포크(지지대)로 견고하게 받쳐진다. 265/45 R 20 광폭타이어가 지면을 움켜지듯 안정감 있게 읽어냈다. 엑셀에서 발을 떼었다가 숨을 들이쉬고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준 뒤 깊숙히 밝아내렸다.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린 놈은 사실상 지상 비행을 시작했다. 시속 210, 220, 230.. 앞차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자 브레이크를 밝았다. 차는 무게와 관성의 법칙을 잊은 듯 매끄럽게 제동기작을 자랑했다. AMG는 엔진뿐 만 아니라 안전을 위해 7단변속 기어와 첨단 브레이크 시스템을 더해 최적의 매커니즘을 만들어 냈다.
차량 가격은 북미에서 8만7000달러(약 8315만원, 옵션 제외 기본형) 수준. 벤츠코리아는 "아직 도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국내에 들여오게 될 경우 기본적인 옵션을 포함해 1억원 중반에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을 것"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