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내 옆의 불가사리

[기자수첩]내 옆의 불가사리

이경숙 기자
2007.03.27 09:48

'청탁'을 받았다. '해피뮤직스쿨'의 오디션만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청탁 이메일을 보낸 이는 미국 네바다주에서 목회를 하는 K목사.

"이미 오디션이 끝난 것은 아닌지요? 기자님이 도와주시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례인 줄 알면서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K목사는 얼마 전 한국의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상담을 요청 받았다. 자신의 아들을 미국으로 입양 보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피아노를 좋아하고 재능도 있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레슨을 시키질 못한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조그마한 자영업을 하는데, 여유가 없나 봐요. 아이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뭐라 답변하지 못한 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기자님 기사를 봤어요. 한국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연락 드립니다."

이메일을 열어본 시간이 23일 금요일 오후 4시반. 오디션은 이틀 뒤인 일요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해피뮤직스쿨'을 후원하는 SK텔레콤 사회공헌팀에 부랴부랴 원서 접수 방법을 물었다. 담당자 Y씨는 "지역복지관이나 학교의 추천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찌어찌 급하게 전화를 돌려 마감 직전 원서 접수엔 성공.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오디션 다음날, Y씨에게 전화했다. '청탁'의 결과가 궁금했다. Y씨는 "45명을 뽑는 오디션에 90명이 왔다, 다들 너무 잘해서 결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리도 뽑아주고 싶지만 절절한 사연의 실력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원서에 쓴 아버지 직업을 보면 오토바이 배달, 학원 버스 운전기사, 무직, 이래요. 집 수입도 월 100만~150만원이고요. 누굴 뽑으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해요. 우리도 참 가슴이 아픕니다."

미국의 사회책임투자펀드 '도미니' 사이트에 가면 우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바닷가에 불가사리떼가 밀려왔다. 그냥 두면 떼로 말라 죽을 터.

지나가던 소녀가 자기 옆에 있는 불가사리부터 집어들어 바다로 던져넣기 시작했다. 소녀의 어머니가 말렸다. "그냥 둬. 어차피 달라지진 않는단다." 딸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 얘는 달라질 것 아녜요?"

재능 있는 아이도 많고, 가난한 아이도 많다. 그들에게 모두 기회를 주긴 어려울 것이다. 모두를 뽑기 위해 제도를 바꿀 때까진. 혹시 내 옆에 바다를 만나지 못한 '불가사리'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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