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와인평론가와 애널리스트

[기자수첩]와인평론가와 애널리스트

이규창 기자
2007.04.09 08:12

2002년 당시 잡지사 엘르에 근무하던 기자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린 세계 양대 와인박람회 '빈이태리'(VinItaly)에 한국 대표 심사위원으로 초청됐다. 각국의 와인평론가와 전문기자 50여명이 모인 만찬에서 한 평론가의 부도덕성이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성토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대량매입한 와인에 최고 평점을 매기는가 하면 신생 브랜드의 지분을 받은 뒤 극찬하는 평론을 잇따라 발표했던 것. 게다가 유명한 브랜드의 와인은 무조건 높은 점수를 주는 행태도 동료들의 비판을 받았고 와인평론가의 능력 평가제 도입까지 거론됐다.

5년 뒤 증권부로 자리를 옮긴 기자는 애널리스트들의 행태가 당시 부도덕했던 와인평론가의 그것과 비슷한 데 놀랐다.

올초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IT업종이 유망하다며 앞다퉈 매수 의견을 냈다. 그러나 1분기 주가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대형 IT주는 힘을 잃은 채 소외됐다.

개별 종목의 주가도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와 거꾸로 움직이기 일쑤였다. 심지어 소속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반대의 매매형태를 보인 증권사들은 '부도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와인평론가와 애널리스트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판단에 시장은 크게 의존한다. 일반 소비자와 개인 투자자들에 있어 그들의 평가는 중요한 가이드로 여겨진다. '공신력'이 무기인 그들의 업계 영향력을 생각할 때, 공정성과 도덕성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5년전 부도덕성 논란이 제기됐던 평론가는 이후 업계에서 여러 차례 체면을 구겼다. 평론가의 평점과 자문으로 운용되던 와인투자펀드가 그의 평점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애널리스트들은 IT 반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을 보면 해당 증권사들이 IT주를 긍정 의견에 따라 순매수에 나설 지 미지수다.

'3일 결제'는 증권가의 변덕스러움을 대표하는 단어다. 조삼모사하는 양태를 비꼬는 말인데, 애널리스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투자자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들(애널리스트)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거꾸로 읽는다"는 한 투자자의 말은 엄중한 경고이고, 이같은 인식은 갈수록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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