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 실패관련 구상권 포기…책임 안져
보건복지부가 졸속 행정으로 360억원이라는 거액의 혈세(血稅)를 허공에 날리고도 책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고 있다.
특히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유일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인 당시 정책라인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기로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360억원이 쓸데없이 낭비됐는데도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이 버젓이 정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 정책에 예고된 실패=복지부는 지난 99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의 의약품 납품비리 근절 지시가 나온뒤 '복마전' 처럼 얽힌 의약품 유통체계에 대한 개편 작업을 추진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으로 지난 2001년 7월 가동했다. 운영 방식은 삼성SDS가 시스템 구축비용을 부담한뒤 사용료 징수를 통해 회수하는 민간투자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시스템 정착에 필수적인 제도 손질은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게 화근을 불렀다. 병원과 약국, 제약업체는 건보공단이 제약업체에 직접 의약품 대금을 지급하는 '직불제'가 임의규정이라는 점을 이용해 시스템 참여를 기피했다. 직불제 임의규정마저도 2002년12월에는 삭제됐다.
이에 따라 정부를 믿고 투자한 삼성SDS는 시스템 가동 3개월 만인 2001년 10월부터 4차례나 복지부가 시스템을 인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2002년 6월 복지부를 상대로 '573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2003년 7월 1심에서 458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지자 항소했으나 지난해 6월 2심 재판부의 '60억원씩 6년간 나눠 배상하라'는 360억원 조정결정을 수용했다. "상고해봤자 실익이 없고 지연이자도 늘어나 국민부담만 커지게 된다"는게 이유였다.
당시 유시민 장관은 "철저하고 치밀하게 추진했어야 함에도 정책실패로 혈세를 낭비하게 된 것에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책임소재를 규명해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약속했다.
◇말로만 반성?=유시민 전 장관의 대국민 약속이 있은뒤 1년2개월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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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해놨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고 난뒤 조치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중이 제 머리를 깎기는 힘들다'는 논리로 공식적인 자체 감사도 하지 않았다.
배종성 감사팀장은 "제도·법령상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체감사 한계를 벗어났다. 감사원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 내부적으로는 책임자 문책은 물론 구상권 청구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팀 관계자는 "내외부 변호사와 논의를 거친 끝에 불법행위가 아니어서 손해배상 청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와 보고했다. 직불제 규정을 폐지한 국회도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 을 주도했던 정책 고위라인은 모두 퇴직한 민간인 신분이어서 현재 책임을 물을 길은 구상권 청구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는 지난해 삼성SDS에 물어줄 돈을 마련하느라 63개 사업 예산을 끌어다 썼다. 그 중에는 공적노인요양보장제도시범사업(19억5000만원), 장애인생활시설확충사업(4억9200만원), 긴급복지지원사업(2억원) 등 취약계층 사업이 대거 포함돼 있다. 복지부의 잘못으로 취약층에게 돌아갈 혜택이 사라진 셈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안팎에서는 "복지예산이 부족하다고 틈만 나면 호소하는 복지부가 이번 일 만큼은 무사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일 국민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