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공정채권추심법의 도전

[법과시장]공정채권추심법의 도전

김관기 변호사
2007.10.29 12:05

자식의 보챔과 채권자의 빚독촉은 집요하고 성가시다. 오죽하면 전생의 채권자가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자식의 보챔이야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는 애정으로 견디게 마련이고, 과거에 빚을 준 채권자의 빚독촉도 채무자는 참아야 할 의무가 있다.

형사범죄가 될 정도만 아니면 빚독촉은 채무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당하다. 그런데 빚독촉을 하기 위하여는 원래의 채권자가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채무자의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절차 비용조차도 날리게 된다. 채무자의 재산을 발견했다 한들 법적 절차 자체가 모든 비용을 회복해 주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비용은 채권을 관리하고 빚독촉을 하고 법적 절차를 실행하기 위하여 정규직원을 고용하는 비용이다. 회수 실적이 있든 없든 정규직원은 급여를 받아가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을 내고 기타 관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비용이고 어쩌면 돈을 먹는 하마가 된다. 따라서 정당성 있는 채권자 자신 또는 그 정규직원의 빚독촉은 채무자로서도 견딜만하여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원래의 채권자가 아닌 제3자의 추심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자율을 통제하고 금융기관의 면허를 제한하여 소비자금융의 공급을 줄이는 것으로 사회적 평화와 균형의 유지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소비자금융은 융성하고 있고 채권추심업이 허용되었다. 그러자 빚독촉에 채무자는 도피하고, 자살하고, 죄를 범하는 경우마저 있다. 사회적 균형을 이룰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

제3자는 원래의 채권자가 가진 도덕적, 민사법적 정당성을 가지지 않는다. 자신의 자원을 투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제3자들은 채권을 사서 이것을 되파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빚 독촉을 하는 것은 채무자가 발행한 채권증서를 사 달라고 적극 권유하는 것이니 방문판매업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입장에 있다. 방문판매를 규제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제3자의 빚 독촉 규제도 필요하다고 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규제의 방향도 방문판매에 대한 것과 기본적으로 같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영업사원의 구입 권유 전화나 방문은 거절될 수 있어야 하며, 영업사원이 찾아 오면 외부에 따로 정해 놓은 사무실로 가서 알아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채무자가 제3자인 추심인에게 채무를 이행할 생각이 없다는 선언을 하면 추심인은 빚 독촉을 하지 못하게 한다. 또 채무자가 제3자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정하면 이 사실을 아는 추심인은 채무자에게 직접 빚 독촉을 하지 못하고 대리인에게만 이행의 청구를 할 수 있게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부실채권에 관하여 시장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긴다. 채무자는 법원의 개입 없이도 채권자들과의 협상을 통하여 채무를 집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지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파산신청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채권추심행위를 함에 있어 오로지 인도적인 방법만을 사용하는 채권추심인이 영업상 불리한 처지에 놓이지 않게 된다. 결국 전반적으로 금융문화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제도에는 부작용이 있고 남용될 수 있다. 갚을 재산과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갚지 않는 자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견해는 빈대 무서워서 초가를 짓지 못하겠다는 발상처럼 어리석다.

미국 공정채권추심법(Fair Debt Collection Practices Act)의 취지를 소개하면서 "여러 시민단체에서 공정채권추심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한지 벌써 몇해가 지났는데 주무당국과 청와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탄식하는 논평이 언론에 보도된지도 2년 반이 넘게 지났다.

이제 위 법의 취지를 따른 채권추심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금에 와서는 여러 시민단체가 답할 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채무자는 가장 혹독하게 운영되는 시장경제체제에서도 보장되는 권리를 아직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반대하는가, 아니면 채무자의 권리에는 무관심한 것인가?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