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대한민국경제올림피아드]
"모진에 갔다 올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아내 인영은 눈길도 주지 않고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한다. 사무실을 나선 정사장은 작업장에 들른다. 김과장이 찬이와 명숙과 작업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명숙이 눈을 치켜뜨며 앞 쪽으로 살짝 턱짓을 한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김과장과 찬이의 등이 움찔한다. 명숙과 찬이는 얼른 제자리로 가서 작업에 매달린다. 뒤를 힐끗 돌아본 김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다. 정사장은 명숙과 찬이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작업을 한다. 정사장은 밖으로 나온다. 마당에서 김과장이 담배를 피우며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정사장은 김과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아줌마들이 통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아요. 뭐라고 한 마디 할라치면 앞서서 느물거리고 그래요.”
김과장은 정사장의 눈길을 피하며 피우던 담배를 발로 밟아 끈다.
봉고차에 시동을 걸고 모진으로 향하는 정사장은 마음이 뒤숭숭하다. 모진에서 호출을 한다는 것이 불안하다. 괜스레 앞서 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매스컴은 온통 유가 얘기다. 자고나면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떠들어 댄다. 오늘 아침에는 140 달러를 넘어섰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00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모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한켠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태림전장의 박사장이 다가와 오랜만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최사장이 직접 호출을 한 걸 보면 뭔가 낌새가 수상쩍은데, 요즘 죽어라 죽어라 하니까 또 수작을 부리려는 거겠지요. 힘들면 지들만 힘든가, 우린 더 물러설 자리도 없는데……”
박사장이 수심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씰룩이면서 말한다. 정사장은 항상 뒤에서만 구시렁거리는 박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강부장이 일어나 회의실로 안내를 한다. 최사장이 종이 두루마리 댓 뭉치가 올려진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 세 사람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강부장이 여직원을 불러 아직 안 온 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라고 지시를 하고 있는데 경원전장의 김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송림 사장님은 아직 출발 안하셨답니다. 빨리 오시라고 하니까 알았다면서 먼저 회의 진행하라고 말씀 하시는데요.”
여직원이 들어와 보고를 하자 최사장의 얼굴이 가파르게 굳어진다. 강부장이 허둥대면서 휴대폰으로 홍사장에게 전원 참석해야 할 안건이라며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한다.
전에는 회의에 꼭 참석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당연히 전원 참석이었고 늦어도 십분 전에는 도착했다. 거래 조건이 자꾸 악화되어 가면서 협력업체 오너들은 늦는 것은 예사고 미팅에 불참하기까지 한다. 홍사장은 삼십 분도 더 지나서야 나타난다.
“두 가지 안건이 있습니다. 사장님들께 협조를 구할 일도 있고, 요즘 인력 상황은 어떻습니까? 새로 아이템 들어오면 지금 당장 작업이 가능하겠습니까?”
“신차 출시가 앞당겨진 겁니까. 갑자기 웬 오더지요?”
최사장의 뜬금없는 말에 박사장이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크게 뜨고 최사장을 바라본다.
D시에 있는 성진전장이 현재 자금난으로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 서원에서 성진전장을 정리할 거라고 한다. 샘플 작업할 반제품을 이미 모진에 받아다 놓았으니까 갈 때 자재과에서 받아가고 조립을 해서 내일 아침까지 납품을 하고 삼사일 내로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갈 채비를 갖추라고 지시하는 최사장의 얼굴에 득의에 찬 미소가 번진다.
최사장은 새로 받아온 아이템 중 모진에서 컨베이어를 돌려서 작업할 메인하고 플로아 빼고 잡선은 자신이 직접 공평하게 네 묶음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한다. 최사장이 아이템 배분에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좀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진도 재정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도 성진전장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물론 사장님들도 우리 못지않게 힘들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진이 있어야 사장님들 회사도 있는 거 아닙니까. 모진이 죽으면 사장님들 회사도 죽는 겁니다. 우리도 다른 방법을 찾다찾다 못 찾고 어쩔 수 없이 아주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각 업체에서 조립한 제품을 물류창고까지 직접 납품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최사장의 말에 업체 오너들 모두가 움찔 놀라면서 눈을 치켜뜬다.
“전 그만 두겠습니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고 판단한 정사장은 벌떡 일어서면서 말한다. 다른 오너들도 모두 따라 일어선다.
“잠깐만 앉아 보세요, 같이 살아 봅시다.”
업체 오너들이 씨근덕거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최사장이 말한다.
“그래요, 같이 동고동락 했는데 안 하더라도 우리 사장님 말씀이나 들어 보세요.”
강부장이 너스레를 떨고는 일어나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힌다.
“예, 저도 업체 다 죽이고 모진만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업체에서 받쳐줘야 모진도 발전이 있는 거니까요. 앞으로는 공장 내에서는 검사만 하고 서브뿐만 아니라 조립까지도 모두 가정집에 부업으로 줘도 묵인하겠습니다. 그러면 인건비를 오십 프로로 낮출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정집에서 부업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비밀이다. 서원에서는 서브 중 극히 일부만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묵인하고 있다. 서원이나 한국자동차에서 시찰을 나오면 모진에서 즉각 연락을 해준다. 언젠가 한국자동차에서 시찰을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라 공장에 데려다 배치할 사람이 없어서 허둥거렸던 때를 떠올리곤 정사장은 쓴 웃음을 짓는다.
“자기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은 원래 물류창고까지 직접 납품을 해야 하죠. 그동안은 우리가 협력업체의 편의를 봐 준거지요. 그런데 이대로 지속하다간 우리가 먼저 죽겠으니 어쩌겠어요. 8월 1일부터 물류창고로 직납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 달 이상 여유가 있으니까 착오 없이 준비해 주세요.”
“사장님, 그것은 아니죠. 우리는 한국자동차가 아니고 모진에서 하청을 받았습니다. 모진에 납품하는 것으로 가공비도 책정이 되었고요.”
정사장은 최사장이 어거지로 밀어 붙이자 반박을 한다.
“완성된 제품을 가지고 3차에서 2차로 다시 2차에서 1차로, 몇 번씩 싣고 내리고 해야 하겠습니까.”
최사장이 불쾌한 낯빛으로 정사장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유가가 치솟으면서 생산량은 감소되어 가고 비용은 자꾸 올라가고 지금 우리 3차 업체는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운영해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나마 지금 오더가 새로 들어온다고 하니까 지탱할 수는 있겠네요. 그런데 직납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어디서 그 비용을 빼서 충당을 하지요?”
정사장은 최사장의 불쾌한 표정을 모르는 척하고 따지고 든다.
“그러니까 조립까지 부업으로 작업해도 묵인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물량도 많이 늘어날 겁니다. 서원에서 오더를 우리 모진에게만 집중해서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나 지금까지 서원에 충성 많이 했잖아요.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고.”
최사장은 둘러앉은 오너들을 웃는 얼굴로 둘러본다. 웃는 그의 얼굴이 무척 능청스럽다.
“조립까지 부업으로 하다가 납기라도 못 맞추면 어떻게 합니까? 모진은 실속 있는 부동산도 꽤 되지 않습니까. 이럴 때 그런 거 활용하시고 우리도 견딜 수 있게 해줘야지 벼랑 끝에 서 있는 3차 업체한테 또 목을 조이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정사장은 최사장의 능청에 누르고 있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정사장이 거친 말투로 따지고 들자 최사장은 능글거리던 표정을 거두고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내려 깐다.
“부동산이 꽤 된다니요. 정사장님, 정말 왜 이래요. 유언비어나 만들어 내고 말이야. 전에는 말도 별로 없고 일을 척척 잘 해내서 고맙게 생각했는데 요즘 왜 그렇게 유독 불만이 많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봅시다. 그린전장 빼고 다른 업체는 조립도 반 이상을 부업으로 하고 있지요? 나도 근래에 알았습니다. 다른 업체는 잘만 하고 있는데 왜 그린만 못 한다고 합니까. 능력 문제 아닌가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유언비어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정사장은 날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최사장을 마주 바라본다. 최사장은 조소어린 표정으로 정사장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정사장은 다른 오너들을 살펴본다. 직납을 하라는 것은 지난날 거래 조건이 불리해지던 상황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두들 입을 다물고만 있다. 또 뒤에 가서나 구시렁거릴 모양이다. 홍사장이 더러 같이 나서는데 그도 오늘은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정사장은 무력감으로 전신에서 힘이 쓱 빠진다. 혼자서는 어떤 논리로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또 따지고 든 자신이 한심하다.
협력업체 오너들은 옴짝도 못하고 있는데 최사장은 아랑곳없이 할 말을 다 쏟아놓는다. 직납을 하는 시점부터 모진이 안고 가던 이틀분의 비축물량도 3차 업체에서 안고 가라고 한다. 비축물량 없이 작업하다가 만약 한국자동차에서 갑자기 생산을 늘리거나 예고 없이 휴일에 특근이라도 하게 된다면 한국자동차의 라인이 서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까 이틀 분의 물량을 조립해서 비축해둬야 하는 거 명심하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수시로 확인할거라고 엄포까지 놓는다. 전에는 회사에 완성품을 비축해 둘 필요는 없었다. 조립이 완성되는 대로 상급업체로 납품을 했었다.
몇 해 전 한국자동차는 장기간에 걸친 전면 파업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서원 이하 협력업체는 계속 가동을 했고 납품도 정상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한국자동차에서는 이틀 분의 작업물량만 비축을 해 놓고 날마다 하루 분 씩 납품을 하라고 했다. 그러자 서원은 모든 자재와 와이어를 각각 단가를 책정해서 하급업체에게 팔고 하급업체에서 조립한 완성품에 와이어와 자재비 그리고 가공비를 합쳐서 단가를 정해서 다시 사가는 형식을 취했다. 게다가 서원에서도 이틀 작업분의 물량만을 비축해 놓고 날마다 하루 분씩 납품을 하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와이어는 서원에서 생산해서 제공해 주고 하우징이나 테이프, 라벨 같은 부속자재도 한국자동차에서 승인해준 것을 서원에서 조달해서 규격에 맞는 정품인지 확인을 하고 출고를 해 주었다. 모진은 서원에서, 3차 업체는 모진에서 자재와 와이어를 제공받아 조립을 하고 월말 결산으로 가공비를 지급받는 전형적인 임가공체계였었다. 월말 정산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월말에 작업 상태로 깔려 있는 반제품에 대한 대금을 운영자금으로 확보해야만 했다. 임가공 관계에서 전례 없었던 새로운 거래 조건에 2차 업체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그때 끝내 불복했던 2차 업체는 탈락이 되었다. 모진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최사장의 ‘예스맨’ 기질에 힘입은 바가 컸다. 최사장은 서원의 결정에 저항 없이 예스를 하고 곧바로 3차 업체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정사장은 운영자금을 마련하느라 집을 저당 잡히고도 부족하여 친척들이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애를 태웠다. 결산일에 최대한 반제품을 줄이려고 해도 이틀 분 이상의 반제품이 작업 상태로 깔려 있게 된다. 와이어나 부속자재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작년엔 서원에서 2차 업체에게 서원으로 납품을 하지 말고 물류창고까지 직납을 하라고 했다. 서원이 안고 가던 이틀분의 비축물량도 2차 업체로 떠넘겼다. 최사장은 그 요구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고통분담 차원이라면서 서원에 모진의 직원을 하나 상주원으로 배치 시켜놓고는 3차 업체에게 서원에 가서 상주원을 통해 자재와 와이어를 직접 받아다 쓰라고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가까운 모진으로만 다녔었는데 작년부터는 모진으로는 납품을 다녔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서원으로는 반제품을 받으러 다니게 했다. 한데 이제는 150km가 넘는 곳에 위치한 한국자동차의 물류창고까지 납품을 다니라고 한다. 정작 모진과는 팩스나 컴퓨터로 서류만 주고받으면 될 상황이다.
서원에서 직접 반제품을 받아다 쓰라고 하자 부영전장의 엄사장이 다 함께 뭉쳐서 모진에 대응하자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새어나갔다. 이후 부영에서 조립한 배선에서 계속해서 불량이 발생했다. 최사장은 부영전장을 탈락시키고 경원전장을 합류시켰다. 서원에서 탈락한 2차 업체 밑에 있던 3차 업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서원에서는 모든 협력업체가 포기를 해도 겁내지 않는다. 이미 중국에 하청업체를 두고 있는데 뭐가 무섭겠느냐. 중국에서는 물량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다고 많이만 달라고 한단다. 중국에서 불량을 많이 내니까 하는 수 없이 고급승용차에 장착되는 배선만 국내에서 생산을 하는데 협력업체가 자꾸 태클을 걸면 서원에서는 불량 나는 거 감수하고 중국으로 다 내줄 것이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원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지 저항해 봐야 괜히 미운털만 박힌다. 부영전장을 탈락시키고 최사장이 했던 말이다.
이틀 분의 비축물량을 추가로 떠안으려면 운영자금을 거의 배로 늘려야만 한다. 그린전장은 비축해 둔 자금이 없다. 담보가 없어 은행 문턱은 높고도 멀기만 하다. 운영자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직납을 하려면 2t 이상의 탑 차를 새로이 마련해야하고 전담 기사도 두어야 한다. 물류창고까지 하루에 한두 번씩 오가는 기름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사장은 이 난감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고개를 들고 동정을 살핀다.
“이번에 들어오는 아이템의 도면입니다, 각자 한 묶음씩 집어 드세요. 공평하게 분배하느라 정말로 신경 많이 썼습니다.”
최사장이 침묵을 깨며 앞에 있는 두루마리 뭉치를 테이블 가운데로 밀어 놓는다. 아이템을 심지 뽑기로 할당해 주는 것도 전에 없었던 일이다.
“머지않아 출시되는 신차 아이템도 이번처럼 제가 직접 분배하겠습니다. 지금은 어느 업종이나 모든 기업이 다 절박한 상황 아닙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고비를 넘기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같이 고생하고 협조한 공 잊지 않고 보답할 테니 힘내봅시다.”
뭔가 떠넘길 때마다 최사장이 하는 말이다. 처음엔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서 믿고 좋은 마음으로 따랐었다. 날이 갈수록 좋은 날이 오면, 이라는 최사장의 약속은 거듭되었다. 하지만 좋은 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최사장의 말은 정중하지도 않고 협박 투다. 과연 좋은 날이 오기는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