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대한민국 경제올림피아드]
정사장은 밤이 꽤 깊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자금을 조달할 일도 걱정이다. 인영은 자기가 친정 쪽에서 자금줄을 끌어 보겠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자꾸 뒤척이자 인영이 팔을 잡아끌고 거실로 나가 술병을 가져온다. 소주를 몇 잔 마시고나자 비로소 잠이 온다.
인영이 그만 일어나라고 채근을 한다. 정사장은 간신히 일어나 앉았지만 머리가 지끈거리고 잠에서 깨어나지지 않는다. 아니 깨어나지지 않는 게 아니라 깨어나고 싶지 않다. 끝없이 잠에 묻히고 싶다. 아침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인영과 함께 서둘러 회사로 간다.
차에서 내리는 정사장과 인영 앞으로 김과장이 다가서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직원들이 한 사람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사장은 이를 꽉 문다. 인영도 얼굴색이 파리해진다. 정사장은 시계를 들여다본다. 9시가 다 되어간다. 여느 때보다 20분 정도 늦게 출근한 셈이다.
“전화는?”
“아줌마들이 다 같이 있다고 하면서 10시까지 회사로 온다고 하는데요.”
10시가 되자 직원들이 떼를 지어 공장으로 들어온다. 직원들을 대표해서 명숙은 임금을 30% 인상해달라고 한다. 정사장은 할 말을 잃는다. 정사장은 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 직원들의 눈을 들여다본다. 아무도 피하지 않고 끝까지 결연한 표정으로 마주 응시한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 다음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열두 명의 얼굴을 다 들여다보고 난 후 호흡을 가다듬고 어제 모진에서 있었던 일과 마음에 일었던 갈등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어떻게도 해 볼 방법이 없으니 도와 달라고 말한다.
“사장님, 그러니까 결국은 못 올려 준다, 군소리 말고 일이나 하라는 거죠?”
정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명숙이 발끈해서 받아친다. 정사장은 아무 소리도 못한다. 우우, 직원들이 야유를 한다. 정사장은 온 몸이 경직된다. 이렇게 야유를 받기는 처음이다.
“남고 안 남고 조건이 어떻고, 재정상태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사장님 소관이지 우리는 그런 거 알지도 못하고 알바도 아닙니다. 그 문제는 사장님이 해결하셔야죠. 저희들에게 할 말은 아니죠.”
명숙이 다시 나서서 하는 말이다.
“한국자동차는 우리의 일고여덟 배를 받고도 임금이 적다고 파업을 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사장님의 술책에 속아 많은 착취를 당해온 거지요. 일고여덟 배의 차이라니 말이 되나요.”
은영이 말한다.
“안 남는다. 죽을 지경이다 하는 뻔한 거짓말로 술수 쓰면서 뒷구멍으로 부동산 사들이는 거 사업하는 사람들 특기 아닙니까. 남는 게 없는데 어떻게 회사는 계속 커가지요.”
민희가 이어 받는다. 그들은 거침이 없다.
직원들 태도가 심상치 않다. 전에는 상급업체의 횡포로 갈수록 불리해지는 조건, 경제동향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 등을 말하면서 다독이면 투덜거리면서도 따라주었다. 지금은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 단호하게 잘라 말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말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요. 타산이 맞지 않아 빚만 산더미 같이 지고 쓰러지고 마는 기업이 요즘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현재 그린전장도 우리 두 사람 인건비도 안 빠지는 실정입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린전장의 사활을 직원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정사장은 말을 하면서 직원들의 동태를 세심하게 살핀다. 찬이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나머지 사람들은 곁눈질로 찬이에게 집중을 한다. 찬이가 손을 뒤로 돌리면서 등을 긁는 척한다. 잠시 후 더한 소요가 일어난다. 한 사람씩 이어받아 말을 하더니 이제는 제각기 떠들어 댄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찬이가 자주 은근한 몸짓을 한다.
“우리 작업하지 말고 지금 그냥 갑시다.”
소요 속에서 명숙이 목청을 돋운다. 모두들 웅성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그래, 여보, 우리 그만 둡시다. 아줌마들 말 맞아. 맞는 말이야. 누구는 일고여덟 개를 먹으면서 덜 찾아 먹었다고 더 내 놓으라고 시위를 하는데 하나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
인영이 푸념을 늘어놓다가 울음을 삼킨다. 김과장도 인영 옆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정사장은 김과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김과장은 회사 창립 초에 입사해서 많은 어려움을 같이 헤쳐 나왔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그도 새로이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김과장, 부업하는 사람들 동요하지 않게 해서 서브라도 차질 없이 해야 하네”
김과장에게 이르고 직원들 집으로 찾아가려고 나서자 인영이 점심을 먹고 하자고 붙잡는다. 콩나물 해장국이 준비되었지만 세 사람 모두 숟가락으로 휘젓기만 하고 제대로 먹지 못한다.
정사장은 직원들 주소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닌다.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쳐봐도 응답이 없다. 집 앞에서 전화를 걸면 전화기 울리는 소리만 새어 나온다. 휴대폰도 여전히 꺼져 있다.
그린이 처한 상황을 모진에 알리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그린의 화물차가 모진에 주차되어 있다. 정사장은 고개를 갸웃한다. 완성된 제품은 어제 저녁에 모두 납품을 해서 김과장이 모진에 올 일은 없다. 사무실 문을 열자 김과장이 강부장과 마주 앉아있다. 강부장이 놀란 듯 정사장님, 하고 부른다.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김과장이 발딱 일어서며 허둥댄다.
“서원에서 샘플 작업한 제품을 빨리 보내달라고 하는데 우리 기사들은 이미 서원으로, 물류창고로 다 나가고 없지 뭡니까. 업체들로 연락을 해보니까, 마침 김과장이 서원엘 가는 길이라고 해서 내가 납품을 해달라고 불렀어요. 김과장, 차에 실어놨지요. 어서 가 봐요.”
최사장은 부재중이다.
“어제 받았던 아이템은 반납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습이 될 때까지 모진에서 조립을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최대한 빨리 수습해 보겠으니 부탁드립니다.”
정사장은 강부장에게 머리까지 조아리며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우리도 컨베이어를 추가로 설치해야 하고 새로 들어온 아이템 작업도 해야 하고 우리 일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한국자동차에서 라인을 멈추게 하면 일 분당 이십만 원의 크레임을 적용받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얼른 수습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세요.”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 맥이 풀린다. 밖으로 나온 정사장은 주차장에서 송림의 홍사장과 마주친다, 홍사장은 7월 말까지 태주전장이 아이템을 인수해 가기로 했다며 너털웃음을 흘린다. 위로를 해야 할지 잘했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정사장은 회사로 돌아온다. 인영이 계속해서 직원들과의 통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직원들 모두에게 통화라도 해야 실마리를 풀지 않겠느냐고 간곡한 말로 메시지를 남긴다.
사무실의 전화벨이 울린다. 인영이 빠르게 전화기를 집어 들어 명숙임을 확인하고 전화기를 정사장에게 넘긴다. 명숙은 직원들은 다 함께 있다며 사장이 오케이 할 때까지 밤낮 같이 행동할 거라고 하면서 개인적인 포섭은 포기하라고 경고한다. 다른 사람들이 옳소, 옳소 하는 아우성이 전화기에 흘러든다. 오케이냐, 노냐 그것만 대답하라는 목소리의 주인은 또 다른 직원이다. 정작 찬이의 목소리는 없다. 정사장은 일단은 만나자고 한다. 전화는 그대로 끊긴다. 다시 그 번호를 눌러보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인영이 지친 모습으로 그만 포기하자고 하지만 진심이 아님을 정사장은 잘 안다. 앞에 앉아 있는 김과장도 조바심을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재력 있는 부친을 두었으니 생활이야 별 걱정이 없겠지만 김과장도 하는 일 없이 놀 나이는 아니다. 정사장은 그만 두더라도 직원들의 파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단에 의해서 그만두고 싶다. 일단 정상화 시켜놓고 나서 다시 생각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김과장이 한 시간 내로 회사로 들어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직장을 폐쇄하겠다는 문자를 전 직원에게 보낸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오지 않는다.
책상 위의 휴대폰이 요동을 친다. 최사장이 강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며 상황의 추이를 묻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국자동차의 라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다. 정사장도 그런 상황이 될까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어둠이 스멀거리며 내려오자 정사장은 긴장감이 점점 더해진다. 전신의 신경 줄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탱탱하게 당겨온다. 가슴 속은 까만 재가 되어간다. 인영이 직원들 집을 찾아가 보겠다고 하자 김과장이 자기는 만나줄지도 모른다면서 먼저 나간다. 한참 뒤 김과장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그는 몇 집을 다녀 봤는데 불도 꺼진 상태라며 전혀 소득이 없지만 다 돌아보겠다고 한다.
정사장이 다시 직원들 집엘 찾아가 볼 생각으로 일어서는데 최사장과 강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어떻게, 잘 해결되었겠지요?”
최사장이 다그치듯 묻는다.
“아직......,”
“아직이라니요. 벌써 비축 물량이 하루치가 소진되었어요. 내일은 꼭 정상 작업을 해야 합니다.”
최사장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사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최대한 노력해서 정상화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정사장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노력해 보겠다니요. 정사장, 당신은 1분에 20만원 하는 크레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진이 그동안 쌓아온 신용은 어떻게 하지요? 누굴 망하게 하려는 게요.”
최사장이 목소리를 착 내려 깐다. 정사장은 뭐라 할 말이 없다.
“안 되겠군. 내일 정상화시킬 자신이 없으면 우리라도 어떻게 해 보게 조립판 하고 서브물을 내주시오. 강부장, 우리 회사에 전화해서 트럭하고 애들 두엇 이리로 보내라고 하시오.”
조립판과 서브물을 모진의 기사들이 실어내 가는 것을 정사장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모진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조바심은 덜하다. 최사장이 돌아가자 정사장은 인영과 같이 직원들 집으로 간다. 여전히 불도 꺼져 있다. 불이 켜져 있는 집도 아이들이 나와서 엄마가 오늘 집에 안 들어온다고 했다고 한다. 최사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상황 변동이 없다고 하자 모진으로 오라고 한다. 집 근처에서 인영을 내려주고 모진으로 간다.
모진에는 다 퇴근하고 최사장과 강부장만이 남아 있다.
“정 방법이 없다면 정사장은 그만 손을 떼세요.”
최사장의 돌연한 말에 정사장은 호흡이 딱 멎는다.
“한국자동차에서 라인이 서면 정사장이나 나나 둘 다 죽는 거 아니요. 정사장이 여기서 손을 떼는 게 그나마 최선 아니요.”
모진에서는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최사장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하고 냉소를 보인다. 정사장은 날선 최사장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한다.
“어떻게 하겠소?”
방법을 생각해 보려 하지만 정사장의 머릿속은 진공 상태다.
최사장이 백지를 내밀며 이 시간 이후 모든 아이템을 반납하고 모진에서 회수해 가는데 최대로 협조를 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한다. 자신이 쓴 각서 위의 글씨가 삐뚤삐뚤 하다. 정사장은 각서에 사인을 하고 일어난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이 휘청거려진다. 강부장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동안 수고했다고 한다. 그의 표정엔 조소가 숨겨져 있다. 정사장은 불끈 살의를 느낀다. 이를 꽉 물고 밖으로 나온다.
집으로 돌아온 정사장은 호흡이 가팔라지고 명치끝에서 심한 통증이 인다. 현관문을 여는데 진땀이 난다. 거실로 들어서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인영이 비명을 지른다.
응급실 의사는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응급처치를 해주고 내일 다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인영이 소리를 지른다. 정사장은 놀라서 인영을 쳐다본다.
“저기, 김과장이 혼자서 모진의 트럭을 몰고 가고 있어. 아저씨 저 트럭 좀 놓치지 말고 미행해 주세요.”
정사장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트럭은 명숙의 집 방향으로 간다. 정사장은 기사에게 트럭이 주차를 하면 눈치 채지 않게 가까이에다 주차를 하고 나서 시동도 끄고 라이트도 모두 꺼달라고 부탁한다. 창문도 조금 내려놓는다. 트럭은 명숙의 집 앞에서 멈추어 선다. 택시 기사도 차를 세운다. 정사장과 인영은 차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바깥의 동정에 집중을 한다. 빵빵, 경적 소리가 울리자 명숙과 그녀의 남편이 대문을 열고 나온다.
“김사장님! 이젠 사장님이네요.”
명숙의 목소리가 간드러진다.
“미안해요. 다른 집 들려서 마지막으로 오다 보니 늦었어요. 작업 부지런히 해주세요.”
김과장이 짐칸으로 올라가서 조립판과 서브물 그리고 자재 박스 등을 내려준다. 명숙의 남편이 받아 들고 집안으로 옮긴다.
“오늘 보니까 모진 사장님 무척 자상하시던데요. 저는 강부장님도 되게 무서운 줄 알았어요. 그린전장에 오면 항상 무서운 얼굴이었잖아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아주 부드러운 분 같아요. 사장님, 우리 공 잊으면 안돼요.”
인영이 부르르 떨면서 밖으로 나가려한다. 정사장은 인영을 붙잡는다. 김과장이 먼저 시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과장과는 형제 같이 지내왔다. 그는 일일이 말을 하지 않아도 회사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김과장이 회사를 탐낼 리가 없다. 강부장이 자신을 제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정사장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제 최사장이 왜 정사장만 유독 불만이 많으냐고 하며 조소를 흘리던 일도 떠올린다. 모진에서 김과장에게 당근을 제공했음에 틀림없다. 맛있는 당근으로 알고 받아먹은 김과장도 머지않아 채찍에 휘둘리면서 깨달아 갈 것이다. 정사장은 머지않은 날에 김과장이 자신을 찾아와 모든 것을 고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땐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고 처세를 잘하라며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정사장은 너무도 길었던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것을 절감한다. 인영도 아무 말 않는다. 이윽고 정사장은 택시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이른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정사장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