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시평]'실용의 시대정신'으로 되돌아 가자!

[MTN시평]'실용의 시대정신'으로 되돌아 가자!

최남수 MTN보도본부장
2009.06.09 08:03

#1. 돼지고기 도매업을 하는 자영업자 A씨. 주로 단골식당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매출이 줄자 나오는 건 한 숨뿐이다. 설상가상으로 타의로 직장을 떠난 실직자들이 돼지고기 도매업에 뛰어들면서 덤핑경쟁까지 일어나 매일 매일이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음대에 다니는 딸 학비에 생활비, 임대료 대기가 사실상 어려워져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장사를 하고 있다. 업종을 바꿔 보려 하지만 마땅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태산같다.

#2. 올 봄 대학을 졸업한 B씨.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 많은 기업에 이력서를 내봤지만 아직 그에게 희소식은 없다. 취업경쟁의 대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지만 외국대학 연수도 갔다 오고 영어 학원, 방송 아카데미 등에도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다. 주변에서도 반듯한 직장에 들어간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B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진다. 아직 올 가을까지는 시간이 있겠지만 결국은 많은 선배들처럼 이른바 ‘88만 원 세대’인 비정규직 취업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경기에 먹구름이 잔뜩 끼면서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빈부 격차가 사상 최대라는 통계적 수치는 삶의 현장에서의 고통지수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들에겐 보수, 진보의 편 가르기나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적 논란도 논리적 유희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먹고 살 수 있게만 해 달라는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불길처럼 일어난 추모 열기는 투박했지만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 왔던 인간적 모습의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미안함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이 貯水된 ‘合집합’의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이 2007년 대선 때 이뤄진 국민적 선택의 의미를 백지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역사가 준 교훈으로,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촛불 정국, 국회에서의 정파 간 힘겨루기, 전직 대통령 서거 이후의 정치권 긴장 고조 등 정신 차릴 수 없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2007년 말의 그 출발점이 아닐까? 국민의 역사적 선택에 머리 숙였던 그 初心이 아닐까 한다.

다시 기억의 시계바늘을 되돌려 보자. 국민이 정권을 바꿔 가며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내 편 네 편 하는 이념적 편 가르기에 너무 지쳤다, 제발 경제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는 일에 매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념의 깃발을 내리고 실용의 푯대를 올려 달라는 요구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일단 이 같은 국민의 소리를 잘 실어 담았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자’,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루는 데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선언. 시대정신이 투영된 새 출발의 적절한 좌표였다.

문제는 좌표는 그대로 인 데 한국 사회의 항로가 우왕좌왕 갈지 자를 보이며 조준점도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거 아닌 가하는 데 있다. 툭하면 좌파네 우파네 하는 편 가르기의 악습은 여전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기세 싸움 탓에 좌는 더 좌향좌로, 우는 더 우향우 하는 건 아닌지... 분배 병행형 보수나 성장 친화형 진보라는 중립지대는 그 토양마저 말라 버린 지경이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기업하고 싶은 의욕을 북돋아 달라는 목소리는 국민의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참고사항’으로 강등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민간 기업들은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절차가 아예 시스템화 돼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평가를 상시적으로 파악해 거기에 회사의 경영을 맞춰 간다. 고객 감동은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현재 고객인 국민의 소리를 상시 경청하는 고객 우선의 행정과 정치를 펼쳐 나가고 있는 걸까? “기업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정부 주도의 정책에 주눅이 들어 움츠리고 있다”는 기업 신문고에서 울리는 소리, “정치가 아무리 정권 장악을 위한 싸움이라고 해도 야권도 민생현안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되는 거 아니냐”는 항변. 다름 아닌 고객 불만사례다.

90년 대 중반 대선 후보로 나선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과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고객인 국민의 요구에 맞춰 ‘변절’까지 마다 않았다. 유권자들이 보수화하자 기존의 진보적 정책을 대폭 수술해 작은 정부, 친 노조 정책의 포기 등 보수 정당이 내놓을 법한 정책을 표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민의 마음을 읽은 이 두 사람은 결국 고객의 선택을 받게 된다.

경제 위기 속에 정치적 소용돌이의 와중에 놓인 한국 경제. 정부와 정치권의 유연한 변신으로 자영업자 A씨, 취업 준비생 B씨 같은 匹夫匹婦의 삶에 희망을 주는 ‘실용의 시대’가 열렸으면 한다. 이념의 힘겨루기에 경제와 국민이 볼모가 되는 악몽은 한 번으로 족하다.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牧民의 정치를 편 측에 역사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선물을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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