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템플턴의 '100년을 내다보는 나눔'<상>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지만,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1분1초를 다투며 '속도의 시대' '실용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100년대계'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재단이 있다. 그것도 현대화의 총아라는 미국사회에서 그렇다. 바로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존 템플턴 경이 만든 '템플턴재단'이 그것이다. 설립 20년을 넘긴 템플턴재단은 '100년을 내다보는 투자'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인류의 지적 진보'라는 거창한 모토를 위해 당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기부보다 재원 확보가 어려운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템플턴 경이 타계한 것은 지난해 7월8일. 그로부터 1년이 흘렀지만 그를 대표하는 '역발상투자'(Contrarian)와 '겸손의 정신'은 '템플턴재단'과 '템플턴상'에 그대로 체화돼 여전히 인류사회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치 있는 투자' 템플턴 재단
"순수과학 연구가 인류 진보의 핵심"
매년 7000만 달러 과학자그룹에 지원
◇템플턴의 기부법=1987년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의 조그마한 창고에서 직원 3명만 둔 채 가족재단 형식으로 출범한 템플턴재단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재단으로 성장했다.
템플턴재단이 운용하는 총자산은 2007년 기준으로 15억달러(약 2조원)를 넘는다. 매년 7000만달러(약 900억원) 이상을 전세계 수백개 과학자그룹과 대학 등에 지원한다.
템플턴재단은 순수과학과 사회과학, 철학, 종교학 등 학문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대담론'에 대한 연구에 지원에 집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재단 스스로는 헌장에 '삶의 거대한 질문에 대한 발견'을 지원한다고 표현했다.
재단이 지원하는 '물리학과 우주론의 근본적 질문을 위한 재단'(FQXi)은 시간의 방향이나 다중우주(multiple universe)의 가능성, 양자역학 등 이론 물리학의 최첨단 연구를 돕는다. 개인이나 가족, 국가간 용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용서연구 캠페인'이나 사랑의 효과도 분석대상에 올려놓은 '무한한 사랑 연구소' 등은 여느 재단에선 지원하기 힘든 분야다.
재단의 파멜라 톰슨 홍보담당 부사장은 "템플턴재단은 일반적인 재단들은 지원할 수 없는 평범하지 않고, 창의적인 과학적 주제들을 지원한다"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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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노벨상' 템플턴상
테레사 수녀 솔제니친 등 영역불문
'인류의 영적 성장' 기여한 인물 조명
◇'종교계 노벨상'도='템플턴상'(Templeton Prize)이 제정된 것은 1972년이다. 당초 '템플턴 종교 공헌상'으로 시작된 템플턴상은 2003년 상의 범위를 정신영역에서 과학적 탐구 노력까지로 넓혔다.
해마다 종교와 과학영역에서 진일보한 성과를 내놓은 학자와 종교지도자들에게 시상한다. 이를 통해 속도와 실용 위주 사회에서 묻히기 쉬운 성과들이 다시 한번 사회적 주목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이 상을 제정한 배경을 템플턴 경은 평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개인에 불과하고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역시 제한돼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진정으로 뛰어난 인물을 찾아 그 사람을 널리 알리는데 애쓰는 일이다."
재단은 이를 위해 세계적 권위를 얻은 노벨상보다 '약간 더 많은' 상금을 지원한다. 상금은 160만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다.
1973년 템플턴상의 첫 수상자는 테레사 수녀였다. 사랑의선교회를 세워 인도 캘커타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데 일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9년에는 종교와 평화에 관한 세계회의를 창설한 일본의 불교 지도자 니코 니와노가 받았다.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장벽을 넘나든다.
그렇다고 종교의 벽에 갇힌 것도 아니다. 소련에서 추방된 망명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1983년), 세계 무슬림 의회 사무총장 이나물라 칸(1988년)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종교와 종교를 넘나들고 종교와 과학, 문학을 가리지 않는다. 종교, 과학, 문학 등 영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영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다. 재단의 기부도 바로 이런 목표에서 이뤄진다.
◇'역발상 투자'의 정신으로=템플턴재단의 기부방법에는 템플턴 경의 '역발상 투자' 원칙이 그대로 묻어난다. '가치투자'의 원조격인 템플턴 경의 투자방법은 투자대상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와 분석에서 시작된다.
그가 남긴 또하나의 교훈은 '진보에 대한 낙관'이다. 다수가 공포에 지배되고 있을 때 템플턴 경은 심도 깊은 분석과 진보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투자에 나섰고, 그 결과 월가의 신화로 자리잡았다.
그는 오랜 연구와 분석을 통해 그리고 투자 경험을 통해 순수 과학연구가 인류 진보의 핵심이자 인류의 발전 방향을 좌우한다고 판단해 순수과학 연구를 과감히 지원하게 됐다. 마치 지금은 일상의 일부인 컴퓨터와 휴대폰이 양자역학과 수학논리, 그리고 여타 최첨단 순수과학의 깊이 있는 발견에 기초하는 것처럼 말이다. 100년을 내다보는 '큰 질문'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재단의 접근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템플턴재단의 또하나 키워드는 '겸손의 정신'이다. 템플턴 경은 재단헌장에 '우리는 얼마나 무지하며, 얼마나 알고자 하는가'라고 썼다. 현대과학의 발전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와 종교간 대화를 위한 재단의 시도가 바로 '겸손의 정신'을 통해 하나로 엮어진다.
톰슨 부사장은 "(재단은) 과학적인 질문과 발견이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인류의 지적 진보를 위해 어떤 분야, 주제의 과학적 접근이라도 가리지 않고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