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밀림의 '기린' 한국경제의 살길

[기고]밀림의 '기린' 한국경제의 살길

안병수 서울디지털대학교 국제금융통상학부 교수
2009.11.17 07:30

아프리카 초원은 치열한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무대다. 그곳에는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이 날카로운 이와 발톱으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초식동물들은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마다의 생존방법이 필요하다.

톰슨가젤은 빠른 발로, 코끼리는 커다란 몸집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기린의 경우에는 5미터에 달하는 높은 키를 가지고 있어 멀리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맹수의 위협을 빨리 인지할 수 있고 다른 초식동물들이 먹기 힘든 나뭇잎을 먹을 수 있는 점이 생존비결이다. 다 자란 기린의 경우 사자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강한 존재라고 한다.

오늘날 세계는 아프리카 초원 못지않게 치열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총칼 대신에 자국의 상품을 앞세우는 무역전쟁의 현장이 되고 있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덩치로 다른 국가와의 교역 없이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나라도 있고 톰슨가젤처럼 빠른 발걸음으로 이 나라 저 나라 사이에서 활발한 교역을 통해 생존하는 나라도 있다.

2008년 세계 12위의 수출실적을 거둔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92.3%로 2007년의 69.4%에 비하여 22.9%포인트나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무역의존도는 수출액과 수입액의 합계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수치다. 2008년은 원화가치가 낮아지고 원유가가 오르면서 달러표시 수입액이 많아져 분자가 커진 반면 국내생산물의 달러환산액이 작아져 분모가 작아졌다.

무역구조가 크게 바뀐 것도 아닌 수치상 변화에 불과하나 우리 경제의 구조가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의 변화 등 외부변수로 인해 큰 영향을 받는 구조임이 확인됐다.

무역의존도와 무역규모를 기준으로 주요 국가를 밀림의 동물과 비교해본다면 무역규모가 크지만 무역의존도는 낮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코끼리로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무역규모에 비하여 무역의존도가 현저하게 높은 홍콩이나 네덜란드는 톰슨가젤과 비교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큰 덩치로 자신을 지키면서 스스로의 활동반경을 갖는 코끼리도, 톰슨가젤처럼 빠르게 뛰면서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연약한 동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개가 넘은 나라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10위권에 가까운 우리 경제는 마치 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위협을 인식하고 그에 대비하면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먹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커다란 몸집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기린 같은 존재인 것으로 생각한다.

기린은 목이 긴 것이 특성이고 목이 길어야 산다. 목이 길지 않은 기린은 기린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포유류 동물은 목이 긴 기린이나 목이 짧은 돼지 모두 목뼈의 수가 7개이다. 다만 기린의 경우 하나하나의 목뼈가 긴 것뿐이다. 기린도 처음부터 목이 길었던 것은 아니다. 기린의 선조는 약 300만년에서 500만년 전에 처음 출현했지만 현대의 기린이 나타난 것은 백만년전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 사이에 목이 짧은 기린들은 자연도태되고 목이 긴 기린만이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1960년대 이래 수출주도정책에 따라 발전해왔고 이는 마치 기린이 수백만년 동안 목뼈가 길어져 살아남은 것처럼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고유의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기린의 긴 목과 같은 우리경제의 특성이라면 수출규모와 경제규모는 성장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환율의 변화나 원자재 가격의 변화에도 아직은 위협을 느끼게 되는 미성숙 기린인 듯 하다.

어린 기린이 사자에게 위협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덩치가 큰 기린으로 커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외부충격에 강한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무역의존도를 유지하면서 수출입 규모를 꾸준히 키워야 한다. 혹여 무역의존도 자체를 낮추라고는 하지 마시라. 기린의 목을 짧게 하는 것보다는 덩치를 키우는 것이 빠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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