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저택에서 한 사업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름은 대니 팡으로 올해 42세인 대만계 이민 출신이다. 잠자리에서 숨진 그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차여 있었다.
그는 폰지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주로 대만 투자자들이 제기한 그의 사기 규모는 6000만달러에 달한다.
팡의 변호사는 "(팡의 죽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퍼부어졌던 온갖 의혹을 직접 해명할 기회를 잃어 안타깝다"고 발표했다. 이어 "그를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내버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죽음으로 돈을 되찾을 길이 막막해진 투자자들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더욱이 사후 속속 드러나는 그의 행적들은 투자자들을 더욱 치떨게 만들고 있다. 미 언론들이 전한 팡의 사기행각을 되짚어 보자.
◇사기의 재구성= 팡이 자신의 고향인 대만에서 투자 활동에 나선 것은 2000년초 부터이다. 그를 단 한번이라도 만난 투자자들은 잘 빠진 명품 슈트에 수려한 화술, 그리고 미국 투자운용사인 ‘프라이빗 이퀴티 매니지먼트(PEM) 그룹’ 대표 명함에 흠뻑 빠져들었다.
씀씀이 통도 컸다. 그가 타이페이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곳은 최고급 그랜드리전트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이었다. 인근 노래방에서는 한번에 1만달러도 뿌려댔다.
그가 내세운 경력도 화려했다. 모간스탠리를 거쳐 정크본드의 거봉 드렉슬의 마이클 밀켄과도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이 대단한 동포 사업가의 말 하나 하나를 마치 투자의 교범처럼 여겼다.
그가 권유한 것은 미국 퇴직자 연금채권 등이다. 물론 고수익 고배당 약속이다. 팡에 현혹된 대만 주요은행들도 직접 투자유치를 도왔다. 투자자 1만6000명이 총 8억달러를 팡에게 건넸다.
◇타고난 사기꾼?= 결국 팡도 꼬리가 잡혔다. PEM그룹의 수상한 조짐을 포착한 감독당국은 폰지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들며 그의 마각 하나 하나를 들쳐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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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의 '피같은' 돈은 그에게 '쌈지 돈'이었다. 제트 전용기만 3대에 밴틀리 등 고급 차도 5대가 됐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날린 금액만도 100만달러에 달했다. 자신을 과시할 자서전에도 170만달러를 들였다. 최신예 걸프스트림 전용기을 타고 최고급 호텔에 머물며 돈을 흥청망청 뿌려댄 그의 사치행각은 결국 더 큰 돈을 빼내기 위한 '미끼'였던 셈이다.
투자자들은 팡이 둘러댄 모든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분통이 났다. 그가 늘 대동했던 '어빈 캐피털 홀딩스'의 모턴 어빈 스미스라는 인물도 '병풍'에 지나지 않았다. 대만에서 아직도 알아주는 미 부동산 재벌 어빈가의 일원은 맞지만 본가와는 먼 그저 일척일 뿐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대만에서 온 투자자를 맞이해 '어빈 기념관'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팡이 내세운 학력도 모두 가짜였다. 우선 리노의 네바다주립대를 다녔다고 했으나 학교측은 수업에 참석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압권은 그가 이력서 등에 기재한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UCI) 학력이다. 1980년대말 학교에 나타난 팡은 1988~89년 이 학교의 아시아태평양학생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이미 BMW를 타고 언변이 탁월한 팡은 투표에서 손쉽게 당선됐다. 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지자 그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각종 집회에 앞장서며 LA타임스에 기사도 났다. 이 신문은 당시 그를 UCI 4학년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대학측은 팡이 86년 여름 한 학기만 재학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팡이 평소 내세웠던 MBA는 커녕 학부조차 졸업을 안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전처를 살해 교사한 혐의도 받았었다. 용의자는 팡의 변호사였으나 당시 법원은 불일치 평결을 내렸다. 아내 살해혐의를 받은 O J 심슨이 받았던 것과 같은 무죄 판단이다.
팡의 이야기를 전한 월스트리트저널은 결국 그를 '재간둥이 미스터 팡'이라고 일컬었다. 이쯤되면 사기의 달인 정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