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제조업체들이 변신하고 있다. '하이테크'의 대명사였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이머징 마켓을 겨냥해 기능을 낮춘 저가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
캐논은 복사 속도가 느리고 거친 중국 종이를 복사용지로 사용하기에 알맞게 제작된 중국용 복사기를 출시한다. 도시바는 기존제품보다 메모리 용량이 더 작은 이머징마켓 맞춤형 넷북을 2011년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일본 제조업체들의 경영전략 수정은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 경제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일본의 역설적 상황을 드러낸다.
이머징 마켓 국가들의 부상과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존 선진국 경제의 완연한 하락세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유럽 등 일본의 고기능, 고가 제조업 수출물량을 소화해 주던 국가들이 경제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댄 탓에 일본의 첨단제품 수요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를 기점으로 '성능이 너무 좋아서 팔리지 않는' 일본 제조업의 '아이러니'는 심화됐다.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08년 말, 일본이 전 세계를 휩쓴 신용경색의 직접적인 충격을 겪지 않았던 것도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악재가 됐다. 일본은 세계 최대 순 대외채권국이었던 탓에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있는 듯 보였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들과 엔 스와프 계약을 '맺어주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가올 실물 경제 위기의 후폭풍에 대비한 개혁의 기회를 놓치는 안일함을 낳고 말았다. 세계 최대 생산설비와 최고 품질을 뽐내던 일 기업들은 얼어붙은 세계 경제에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 결과 전략을 수정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겠다는 구호들이다.
일본이 겪은 아이러니는 결국 영원한 악재도, 호재도 없음을 보여준다. 세상의 기준은 끊임없이 변한다. 악재와 호재를 가르는 기준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라는 것을 지난해의 세계 경제는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