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없이 재정적자 어떻게..돌을 달고 벼랑서 뛰는 꼴"
독일 특유의 병정식 밀어부치기에 세계 금융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영미권에서 혀를 내두르고 있지만 독일은 아랑곳없이 정공법을 끝까지 밀고 갈 기세다.
미국증시만 해도 3대지수가 4월 고점에서 10% 이상 떨어졌다. 다우지수는 20일(현지시간) 전날대비 376포인트, 3.6% 빠진 1만88을 기록했다. 다우존스 스톡스600지수는 이날 2.23% 하락, 지난 7일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글로벌 다우지수는 이날 1750.64로 마감, 4월15일 고점 2091.32에 비해 16.3% 급락했다.
영향은 증시만 받은 것이 아니다. 유가는 8일 연속 하락, 7월물 기준으로 간신히 배럴당 70달러대에 턱걸이 했다. 8개월래 최저치다. 유가는 5월초까지만 해도 배럴당 80달러를 웃돌았다.
그간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금값마저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 선물값은 12일 온스당 1243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내리 하락, 이날 사상최고치에 비해 4.4% 낮은 1188.6달러에 머물렀다.
외환시장은 직격탄을 그대로 맞았다. 유로/달러환율은 최근 한때 1.21달러대로 4년래 최저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후 1.24달러대로 복귀했지만 유로 약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엔화가 오히려 미국 달러보다 더 좋은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유로/엔환율은 9개월래 최저인 110엔 수준으로 폭락했다.
자금지원 대가로 고강도 긴축요구..독일은 유럽의 IMF?
이같은 금융시장 요동 이면에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로존 위기해법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적 결과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독일이 밀어부치는 범유럽 재정긴축이 유럽을 삼키고 결국 세계경제 회복을 쓰러뜨리거나 지연시킬 것이란 우려다.
유로존 맏이로서 독일은 유로위기 수습을 위해 '병정'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회원국들에게 과격한 구조개혁과 재정긴축을 추진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독일이 추구하는 해법은 △ 유로동맹 유지 △ 채무재조정 배제 △ 구제금융 지원 △ 재정긴축 강화 및 구조개혁 △ 금융투기 규제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유로화 미래=유럽의 미래로 보고 있다. 19일 유로구제기금 독일 분담금 승인을 구하는 하원 연설에서 메르켈 총리는 "유로화가 위험에 처해있다"며 "유로의 실패는 곧 유럽의 실패"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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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국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유로 해체 우려를 높이는 유로동맹의 탈퇴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빚이 많아 허덕이는 나라에는 부도가 나지 않도록 돈을 앞장서서 지원해주겠지만 대신 가혹할 정도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허리띠를 졸라매서 문제의 화근인 적자 재정을 뿌리 뽑아야한다는 것이 독일의 요구다.
나라빚을 탕감해주거나 덜어주는 채무 재조정도 마지막에 가서나 고려할 수 있는 카드 정도로 고려된다. 유로 실패의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 뭔가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헤프게 쓸 수 없다는 정서다.
한마디로 독일이 유럽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극복을 위해 독일은 자신이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범유럽권이 일사분란하게 재정긴축을 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유로존 통합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6.3%정도다. 독일주도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된 그리스는 물론 잠재적 채무위기국으로 꼽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세율인상, 지출 축소를 골자로 하는 내핍계획을 밝힌 상태다.
채무부담 높은 이태리도 재정긴축안을 마련중이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프랑스도 재정긴축 움직임에 동참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근 "헌법에 재정 적자 감축 의무를 적시, 선거로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로 하여금 5개년 계획을 짜고 준수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은 이같은 숭고한 뜻을 이해못하고 물불 가리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쫓는 고약한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 독일은 18일 자국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는 유로채권 및 신용부도스와프, 10개 대형 은행주에 대한 네이키드 숏셀링을 금지시켰다. 없거나 빌리지 않은 주식을 팔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학계 "독일 해법, 돌을 달고 벼랑서 뛰어내리는 꼴"
이같은 독일식 해법에 대해 영미권 오피니언 리더들은 고개를 흔든다. 마틴 펠드스타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뉴욕대 루비니 교수 등은 이구동성으로 심한 경기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는 반응이다.
유로존에 묶여 있는 나라는 자체 환율정책과 수출증가로 위기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 경기침체를 완충시켜줄 스펀지가 없는 상태에서 강도높은 재정긴축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낙하산은 고사하고 돌을 달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는 게 영미권 학자의 시각이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세수가 줄기 때문에 아무리 지출을 줄여 적자를 없애려 해도 도루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출을 줄이면 줄일수록 경제는 침체압력을 받아서 세수감소라는 부메랑을 더 크게 얻어맞는다.
로고프 하버드 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서 "그리스가 계획한 재정적자 감축안에 성공한다 쳐도 2~3년 지나면 GDP대비 나라빚이 150%로 부풀어 올라 부도위기를 또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영미권 학자들은 차라리 그리스 처럼 위기정도가 심한 나라는 일시적으로라도 유로존을 떠나게 하는 '방학'을 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딴 화폐로 딴 살림하면서 수출을 늘리고 구조개혁을 병행토록 할 기회를 준 뒤 그 경제가 다시 합격점에 이르면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떠냐는 논리다.
물론 이는 유로의 깃발을 꿋꿋이 들고 한명의 낙오자 없이 함께 전진하려는 독일이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도 그리스 유로 탈퇴 시나리오가 쉽게 실현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타협을 불허하는 독일의 완고한 입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해법을 쳐다보는 시장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범유럽 재정긴축, 구조개혁이 몰고올 유로존 경기침체의 골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더 큰 불안을 낳고 있다. 이미 유로 위기 충격파는 미국, 중국에 까지 상륙조짐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