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물건을 살 때도 눈치봐야 하나?”

중소기업, “물건을 살 때도 눈치봐야 하나?”

김경원 기자
2010.07.15 15:22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주식투자의 격언이지만 대기업의 경영방식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가 인하 압력을 행사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하청업체에게 적은 이윤만 남기고 대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영방식이다.

이들 대기업은 원재료 가격도 높이 책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원성을 사고 있다. 판매가를 높여 중소기업이 가져가야 할 이윤을 가져오는 형태다. 대기업은 구매할 때는 낮은 가격, 판매할 때는 최대한 높은 가격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갑’이고 물건을 파는 사람을 ‘을’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거꾸로 작용한다. 즉 물건을 파는 대기업이 ‘갑’이고 1차 벤더인 물건을 사는 중소기업은 ‘을’이다. 대기업이 공급 물건을 확 잡고 있어서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A중소기업은 연 수백억 원 규모의 원재료를 대기업으로부터 구매해서 제품을 생산한다. 국내에서 이 원재료를 생산하는 곳은 3~4곳의 대기업뿐이다. 이들 기업은 1차 벤더로 1~2개의 중소기업에만 원재료를 팔고 있다.

A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원재료를 구매할 수 있어서 고수익은 아니지만 다른 기업에 비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A기업은 원재료를 공급받기 위해 대기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원재료 가격은 지난 몇 개월 동안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시장에서는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보다 약 30% 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A기업은 그동안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으나 올해는 수출계획을 접었다. 국내 원재료 가격으로는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시장에서 낮은 원재료 가격으로 생산한 제품을 높은 국내 원재료 가격으로 맞출 수가 없어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문제는 바잉파워가 없기 때문이다. A기업이 연간 수백억 원 규모의 원재료를 구입하지만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대기업과 가격을 협상할 정도의 힘이 없는 셈이다. 다른 기업도 비슷한 처지다.

해외에서 원재료를 구입하려고 해도 A기업의 구매 규모로는 추진하기가 어렵다. A기업 규모의 업체들 10여 곳이 모여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각 중소기업이 구매력을 한 곳에 모으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해외에서 원재료를 들여와도 문제다. 원재료를 저장할 물류창고가 없어서다. 특히 해외가격은 신축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했을 때 국내 대기업이 원재료를 팔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배제하기 힘들다.

A기업 구매담당자는 판매자인 대기업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준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원재료를 많이 구매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다른 중소기업도 더 많은 물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 담당자에 가격을 낮춰달라거나 원재료를 조금 더 공급해 달라고 애걸하기도 한다”며 “심지어 영업비 한도 내에서 구매 담당자를 접대하기도 하면서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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