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이머징 인플레 갈등, 환율전쟁 재고조

선진-이머징 인플레 갈등, 환율전쟁 재고조

권성희 기자
2011.02.10 15:24

[선진국 VS 이머징, 디커플링의 시대②]

인플레이션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이머징국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아직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면화하진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을 두고 ‘네 탓’ 공방이 심하다. 성장 속도의 차이로 인플레이션 수준이 크게 달라지자 정책적 불협화음도 고조되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전세계 주요 언론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양적 완화 탓이 아니라 이머징국가의 고성장과 부적절한 정책적 대응 때문이라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이머징국가의 과잉 수요 압력을 미국의 통화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성장의 균형을 조절하기 위해 적절한 정책적 수단을 활용하는 일은 전적으로 이머징국가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적절한 정책적 수단이란 금리 인상과 더불어 이머징국가의 통화 절상을 의미한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12월 중국과 일부 이머징국가가 통화 가치를 너무 낮게 유지해 자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위험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30일 웹사이트에 공개한 지난해 4분기 정책보고서에서 “FRB의 양적 완화 정책이 중국 등 이머징국가에서 원자재와 자산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선진국과 이머징국가간 반목은 서로가 경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수준이 크게 다른데다 이에 따른 정책적 대응이 자국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2%에 그쳤다. 버냉키 의장은 9일 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낮다”며 국채 매입을 포함한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통화 완화적 기조를 계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일부 살아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성장세가 낮아 금리를 상당 기간 올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기적인 문제”일 뿐 발 등의 불로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권은 이미 지난해부터 긴축 사이클로 들어섰다. 중국은 8일 지난해 10월 이후 3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중국은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5%를 넘는 것으로 나오면 올 1분기 안에 또 다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4일 2년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달에는 브라질이 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지난해 7월 이후 첫 금리 인상이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5.9%로 2004년 7.6% 이후 최고를 기록하자 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인도는 물가상승률이 8%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지난 1월 금리를 또 다시 올렸다. 지난해 봄 이후 7번째 금리 인상이었다. 태국과 페루 등도 지난 1월에 금리를 올렸다.

이머징국가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잡히지 않으면 금리 인상 외에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통화 절상까지 용인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인 피오나 레이크는 “아시아 국가들의 마지막 정책적 수단은 통화 절상”이라며 “한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 가치를 절상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머징국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통화 절상으로 수출이 타격을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0일 중국의 금리 인상 이후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자 각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 달러를 매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도 물가 상승세와 더불어 헤알화 강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간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이 글로벌 환율 전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하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촉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중국이 브라질 헤알 가치가 오르는데 위안화 절상을 막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과 이머징국가의 성장 불균형은 정책 불협화음에 이어 또 다른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권성희 기자

안녕하세요. 국제부 권성희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