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 반도체주 투자등급 하향,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이 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를 끌어내렸다. 특히 반도체주를 비롯한 기술주가 증시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지만 S&P500 지수가 지난주 저점을 깨지 않고 1310선을 유지한 것과 나스닥지수가 50일 이동평균선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이날 다우지수는 79.85포인트, 0.66% 하락한 1만20990.03으로 마감했다. 나스닥지수는 39.04포인트, 1.4% 떨어져 낙폭이 가장 심했다. 종가는 2745.63이었다. S&P500지수는 11.02포인트, 0.83% 내려간 1310.13으로 거래를 마쳤다.
뉴욕 증시는 이날 웨스턴 디지털이 히타치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사업부를 43억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에 강세로 출발했다. 이번 인수합병(M&A)으로 주요 하드디스크 생산업체는 3개에서 2개로 줄게 된다. 이에 따라 웨스턴 디지털은 이날 16% 급등했다.
하지만 강세로 출발했던 증시는 리비아에서 교전이 계속되며 유가가 오르자 빠르게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 중 한 때 배럴당 107달러까지 올랐다.
◆반도체주 투자의견 하향, 반도체지수 2.7% 하락
초기 매도세는 기술주에서 시작됐다. 웰스파고가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확대’에서 ‘시장비중’으로 하향 조정한데다 네트워킹 장비업체인 시에나가 2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웰스파고는 반도체주에 대해 특별히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종목은 고평가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웰스파고의 투자의견 하향으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7% 하락했다.
웰스파고가 ‘최선호주’로 꼽은 인텔마저 1.6% 하락했다. ‘업종 수익률 상회’ 의견을 받은 퀄컴, 리니어 테크놀로지, 아날로그 디바이스, 자일링스, 알테라도 일제히 하락했다.
웰스파고의 반도체주 투자의견 하향은 지난 2년간 증시가 두 배 가량 급등하며 시장이 어느 정도 적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정 수준에 도달했고 일부 종목은 고평가 영역에 진입한 만큼 큰 폭의 상승 여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투자자들이 직시하게 만든 셈이다.
웰스파고 영향에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은 4.6%, AMD는 4.2% 미끄러졌다. 아울러 시에나는 실적 전망 하향으로 9.8% 급락했고 경쟁업체인 JDS유니페이스도 덩달아 파편을 맞으며 6.9%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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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경제에 미칠 타격 걱정해야 하는 수준
이날 WTI는 상승폭을 줄여 1.02달러, 0.98% 오른 105.44로 마감했고 브렌트유는 오히려 1.27달러, 1.1% 하락한 114.70달러로 마감했다. 하지만 고유가가 계속됨에 따라 투자자들의 심리는 악화되는 징후가 뚜렷했다. 투자자들의 공포를 나타내는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8% 상승하며 20.66으로 거래를 마쳤다.
레이몬드 제임스의 주식 매매 이사인 대니얼 맥머혼은 “시장의 초점은 중동과 유가이며 이 변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씩 오를 때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5~0.5%포인트씩 낮아진다”고 말했다.
또 “고유가가 현재 미국 경제가 누리고 있는 완만한 회복세를 꺾을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유가가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줄 때까지 증시는 박스권에 붙잡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이스 인베스트먼트 카운셀의 계량 애널리스트인 브라이언 라즈리스학도 “투자자들이 유가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은 고유가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라며 “유가가 오르면 소비자 지출이 위축돼 전체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렌미드의 투자 전략 이사인 제이슨 프라이드는 “현재 유가는 전반적인 경제에 미칠 타격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PFG 베스트의 수석 시장 애널리스트인 필 플린은 “투자자들은 최근의 긍정적인 경제지표 아래에서 햇볕을 쪼고 싶어하지만 유가가 증시의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이날 소시에떼 제너럴은 사우디까지 정정 불안에 휩싸이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올라도 경제지표 괜찮으면 랠리
하지만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낙관론도 제기됐다. 모간스탠리의 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는 트랙시스 파트너스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바톤 빅스는 “현재 증시는 배럴당 110달러의 유가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며 “만약 경제지표만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나온다면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워런 버핏과 달리 미국 경제에 대해 다소 신중했다. 빅스는 버핏이 코끼리를 사냥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고 밝혔지만 자신은 반대로 떠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고 말했다. 빅스는 “미국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과 유럽 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걱정”이라며 “앞으로 수개월 동안 가장 투자하기 좋은 지역은 중국과 홍콩”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찰스 에반스 총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유가 상승은 현재 독립적인 변수이며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데니스 록하트 총재는 전미 기업경제학협회(NABE)에서 중동 정정 불안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조성되고 있다며 유가가 계속 올라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면 3차 양적 완화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리처드 피셔 총재는 국제은행가협회(IIB)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 완화가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줬는지 의심스럽다며 추가 통화 완화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날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B1으로 낮췄다. 이는 잠시 잊고 있던 유럽의 재정적자에 대한 걱정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었지만 그리 시장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날 영국 FTSE100 지수는 0.3% 떨어졌고 프랑스의 CAC지수는 0.7%, 독일 DAX지수는 0.2% 하락하는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