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Anthony Samuelson)은 저서 ‘경제원론’ 제1장에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지적했다. 구성의 오류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개인이 저축을 늘리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소비위축과 경제활동 부진을 초래하는 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구성의 오류에 해당한다. 한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해당 기업은 이익을 얻지만 모든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다.
새뮤얼슨이 경제원론에서 구성의 오류를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경제정책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오류를 범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 어떤 경제주체보다 정부당국의 정책오류에 따른 부작용이나 폐해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증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자문형 랩 선취수수료 규제도 구성의 오류를 떠올리게 한다. 금융감독당국은 자문형 랩 선취수수료를 연간기준으로 가입기간에 비례해 징수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 수수료 체계로는 투자자들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는 자문형 랩 고객이 가입한지 1년도 안 돼 해지해도 이미 지불한 선취수수료를 돌려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의 방침대로 수수료 체계가 바뀌면 앞으로는 가입기간을 뺀 나머지 기간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고객이 선취수수료가 2%인 자문형 랩에 1억원을 가입할 경우 총 200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하지만 6개월 만에 중도해지 할 경우 1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투자비용이 줄어드니 투자자들로서는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이번 규제는 금융상품의 일반적인 보수와 수수료 개념을 흔드는 일이다. 수수료는 투자자가 특정 서비스에 대해 일시에 지급하는 비용을 말한다. 반면 보수는 투자자가 금융상품의 운용, 관리 등 지속적인 서비스에 대해 해지(환매)시점까지 지급하는 비용으로 그 성격과 목적이 다르다.
수수료를 가입기간에 비례해 징수하는 것은 사실상 보수와의 차이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경우 갖가지 부작용들이 우려된다. 우선 금융상품간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미 선취수수료 체계가 정착된 펀드나 신탁상품에도 같은 잣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상품의 다양성과 투자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수수료를 보수화한다면 증권업계는 선취수수료 상품 개발을 포기하고 보수만 떼는 상품 개발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당국의 규제 의지가 알려지면서 증권업계는 이미 선취수수료 상품 개발을 전면 중단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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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국 투자자의 선택권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비용부담만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선취수수료는 가입시점에 투자원금을 기준으로 딱 한번만 떼지만 보수는 매년 순자산 기준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선취수수료 체계 변경으로 자문형 랩의 투자비용 부담이 감소하면 쏠림현상이나 단기투자 등의 부작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 금융정책의 오류가 시장을 뒤흔든 일을 우리는 수 없이 많이 봐왔다. 지난 2007년 실시된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정부당국은 환율안정을 목적으로 해외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줬지만 정작 해외펀드의 환헤지 물량으로 환율은 폭등했고, 비과세를 쫒아 투자에 나섰던 서민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결국 정부당국은 '펀드성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라는 원칙까지 깨가면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해외펀드 손실상계)를 줘야 했다.
오류는 또 다른 오류를 낳는다. 오류를 줄이려면 원인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선취수수료의 문제의 핵심은 '투자자의 부담'이 아니다. 투자자들은 기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언제든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실적 쌓기에 급급한 일부 증권사들이 선취수수료를 악용해 과도한 매매회전율 등 단기투자를 조장하는데 있다.
주식시장이 조금 살아나는 듯 하자 다시 투기적 매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정책 당국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