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공시읽기 17-자사주 신탁]
지난해 5월 31일 현진소재는 6개월 간 100억원어치의 자기주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자사주 취득 신탁 계약 체결은 회사의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로 해석됐고 주가는 2만원 대를 회복했다.
계약만료일인 작년 11월 30일 신탁업자인 현대증권은 맡긴 돈을 현금으로 반환했다. 맡겼던 현금은 100억원에서 102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대증권은 작년 8월 31일과 9월 30일에 12억원의 주식 7만 8250주를 사들였고, 계약 만료 직전인 11월 25~26일 전량 처분했다. 매도금액은 13억 7076만원으로 약 14%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자사주 신탁은 '계약일 이후 3개월이 되는 날로부터 5일 이내'에 한번씩만 취득상황보고서를 공시하면 된다. 그동안 주식을 어떻게 샀다 팔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현진소재의 경우도 100억원이라는 통큰 주가부양을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실제로는 12억원어치의 주식을 샀다가 그마저도 만료일 전에 모두 처분한 것이다.
최소한 자사주신탁 계약 목적을 공시 그대로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로 생각한 투자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다.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직접 매매보다 기업에 유리한 신탁 제도
기업은 주가관리를 위해 자사주를 직접 사고팔거나 은행, 증권사 등과 신탁계약을 맺고 간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
자사주 신탁은 직접 매입과 달리 매매 내용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가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당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사주신탁은 직접 취득 · 처분보다 규정이 느슨해 기업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직접 취득은 취득 예정금액 산정 방법과 1일 매수 주문 수량한도와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한다. 하지만 자사주신탁은 체결기관과 계약기간만을 공시하기 때문에 취득상황보고서를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알 수 있다.
직접 매매는 취득 후 6개월간 처분이 금지되고, 처분 후 3개월간 취득이 금지된다. 자사주신탁은 시기 및 제한이 느슨하다. 자사주를 취득한 후 1개월 이내에 처분하거나 처분한 후 1개월 이내에 재취득만 금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유자금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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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신탁 규모가 20억원이라면 자사주 20억원어치를 매입하고 한 달만 지나면 언제든 자사주를 모두 팔아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올릴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
가입기간 동안 신탁운용자를 통해 지속적인 주가관리도 가능하다. 하루에 살 수 있는 양도 직접 매매보다 유리하다.
자사주 직접 매입은 전체 자사주 취득 물량의 10%와 공시 전 1개월간 일평균 거래량의 25%중 많은 수량으로 하되 발행주식 총수의 1%가 넘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자사주 신탁은 발행주식 총수의 1%만 넘지 않으면 가능하다.
또 직접 취득할 경우 보고서에 주문수량, 취득수량, 1주당 취득가액 등이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매수 주문을 냈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날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 측이 생각하는 적정한 매수가격을 유추해 투자에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자사주신탁은 취득수량과 가액만 표시한다.
신탁계약 해지. 현금 확보 위한 매도 물량 '주의'
2010년 10월 28일현대상선(19,810원 ▼120 -0.6%)은 현금 확보를 위해 현대증권과 체결했던 총 3778억원 규모의 자사주취득 신탁계약 4건을 해지키로 했다. 시장은 현대상선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기 위한 실탄 마련으로 해석했다. 매도 물량 급증 우려에 주가도 5.6% 하락했다.
자본시장법 시행 후 자사주 신탁 계약 해지 시 현금이 아닌 주식현물로도 반환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수정됐다. 과거에는 신탁계약을 해지하려면 주식을 처분, 현금으로 돌려받을수 밖에 없어서 물량부담으로 주가하락요인이 된데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상장사들은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주식으로 인출해 직접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신탁 관련 수수료를 절감하는 동시에 주식을 법인계좌에 보유해 주가관리라는 자사주 기능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주주 입장에서도 신탁계약 만료에 따른 부담감이 적어졌다는 이점이 있다.
기업이 신탁 계약 해지분만 보유하고 있다면 즉시 처분이 가능하다. 단 직접 취득 분을 보유하거나 타 신탁계약이 있을 경우에는 직접 취득 완료 시점 혹은 타 신탁계약 체결일로부터 6개월이 경과해야 한다.
만기가 되지 않고 중도해지 할 경우에 공시 의무가 부과되기는 하지만 불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업은 아무 때라도 신탁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만기 또는 중도 해지에 따른 유일한 제재는 '신탁계약 해지 후 3개월 간 체결 금지'뿐이다. 자사주 신탁 공시를 낸 뒤 1주도 사지 않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자사주신탁공시=주식매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셈이다.
이외에 신탁계약을 통해 취득한 자기주식을 장외에서 처분하는 경우도 눈여겨봐야 한다.
2006년영남제분(731원 ▲10 +1.39%)은 자사주신탁을 장외에서 처분할 때 공시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후 금융위원회( 구 금융감독위원회)는 자사주를 장외에서 처분할 경우 주요경영사항으로 신고토록 제도를 보완했다.
그러나 장외 매도의 경우 가격에 대한 명시적 제한 이 없다. 장내처분 제한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도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만약 낮은 가격에 자사주를 특수관계인들에게 장외매도 한다면 곧바로 시장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