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부채 위기가 추가 구제금융 투입과 채무조정을 통해 해결된다 해도 유로존 위기가 궁극적으로 타개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 연합체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3일(현지시간) '해체로 가는 유로존'이라는 제목의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문에서 현재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는 회원국 사이의 경쟁력과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고민이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이 최적의 통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개별적으로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구조개혁을 통해 회원국들의 생산성과 성장률이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되기를 기대해왔지만 이런 기대는 무산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역설적이게도 유로존 금리가 초기에 낮은 수준으로 수렴되면서 나타난 후광효과는 오히려 회원국간 재정정책의 격차를 벌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같은 국가는 방만하고 무모하게 재정을 관리했고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는 저금리로 인한 자산 버블이 나타났다. 구조 개혁은 지연되고 유로존 내 생산 증가율 대비 임금 상승률은 격차가 두드러지게 벌어졌다. 이 결과 유로존 주변국들의 경쟁력은 크게 저하됐다.
루비니는 또 역사상 성공한 통화 연합체는 모두 궁극적으로 정치적, 재정적 통합과 관련이 있지만 유로존의 정치적, 재정적 통합 노력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정치적 통합 노력은 사실상 중단됐고 유로존이 재정 연합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중앙기구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과 이를 위한 유로화 채권 발행이 필요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다.
유로화 채권을 발행하면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핵심 국가는 자국뿐만 아니라 주변국 채권의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핵심 국가의 납세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지금 유럽연합(EU) 내에서 논의되는 채무 상환이 어려운 국가들에 대한 부채 축소 혹은 '리프로파일링(만기 연장)'은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유로존 내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루비니는 유로존 내 경제적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주변국의 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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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니는 현재 상태에서 유로존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3가지라고 봤다. 첫째는 유로화 가치를 달러 대비 1대 1 수준으로 대폭 절하해 주변국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유로화의 급격한 가치 절하는 독일의 대규모 무역흑자와 ECB내 인플레이션 매파적 성향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다고 루비니는 판단했다.(통화 가치가 절하되면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두번째 방안인 생산성 증가율을 높이고 임금 상승률은 억제하는 독일식 개혁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루비니는 봤다. 이같은 개혁은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경향이 있는데다 독일은 구조개혁의 성과가 나타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유로존 주변국들은 이보다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디플레이션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야기하기 때문에 섣불리 쓰기가 어렵다. 아르헨티나가 과도한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플레이션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결국은 3년간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한 뒤 포기하고 디폴트와 환율 페그제 폐기를 선언했다.
디플레이션을 통해 유로존 주변국의 부채를 줄이고 핵심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한다 해도 주변국의 실질적인 부채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루비니 교수는 이런 점에서 유럽중앙은행(ECB)과 EU가 진행하고 있는 내부적 통화가치 절하 논의는 결함이 있으며 재정 긴축안도 단기적으로 주변국 경제 성장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3가지 대안이 모두 현실성이 없다면 유로존 주변국의 경쟁력과 성장세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나머지 방법은 이들 국가가 유로존을 떠나 개별적인 자국 통화를 채택해 명목 및 실질가치를 대폭 절하하는 것이라고 루비니 교수는 지적했다.
실제로 재정위기를 겪었다 성장세를 회복한 신흥국들은 모두 유동성 확보나 재정 긴축, 구조 개혁, 때로 부채 재조정이나 부채 삭감에 앞서 무엇보다도 먼저 환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루비니 교수는 지금 유로존 주변국의 유로존 탈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통화 가치 절하와 핵심 채권국들의 자본 손실로 인해 나머지 유로존 국가들에 대규모 무역 손실을 안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루비니는 그러나 지금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유로존 탈퇴가 5년 뒤에는, 특히 유로존 주변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에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로존은 성장세에 버팀목이 되고 있는 공통된 저금리 여건과 구조개혁이 유로존 회원국들을 하나로 수렴시킬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궁극적인 재정 및 정치 결합에 대한 전망으로 뭉쳐져 있다. 하지만 현재 이같은 결합은 지나간 옛일이며 개혁은 중단됐고 재정 및 정치적 결합은 아득한 꿈일 뿐이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에서 채무재조정은 불가피하며 문제는 채무재조정의 시기와 방법일 뿐이라는 지적했다. 문제는 주변국의 채무를 줄여준다 해도 주변국의 경쟁력과 성장세를 회복시키기엔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 주변국이 경쟁력과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통화 연합체에서 탈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로존 탈퇴가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럽게 진행된다 해도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탈퇴해서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