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불 끈 그리스, 긴축안 이후에도 '첩첩산중'

급한불 끈 그리스, 긴축안 이후에도 '첩첩산중'

권다희 기자
2011.06.30 14:08

그리스 위기는 유동성 문제 아닌 지급능력 위기…긴축안 실행 가능성도 미지수

그리스 의회가 29일 재정 긴축 안을 통과 시키며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가 발등의 급한 불을 껐다. 다음달 3일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20억 유로의 5차 구제 금융을 받을 수 있게 돼 7월, 8월 만기가 돌아오는 24억 유로, 66억 유로를 갚아 일단 국가부도 사태는 막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발등의 불은 제거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긴축 안 통과로 유동성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결됐으나 그리스의 지불 능력이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만 438억 유로다. 여기에 국채 금리 급등으로 이자 부담도 늘어가고 있다.

물론 디폴트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5월 약속된 3년간의 1100억 유로 규모 구제금융 패키지에 이어 2014년 이전 1200억 유로의 추가 지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채무 문제를 영원히 외부 지원으로 해결한 순 없는 노릇이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말 그리스의 국가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150%인 3400유로로 추산했다. 1130만 명의 그리스 인구 한 명 당 3만 유로의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이 중 대외부채 비율은 70%로 추정된다.

최근 시장에서는 그리스 문제의 해결책으로 프랑스가 제시한 자발적 차환(롤오버, 일명 프렌치 플랜)이 가장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으나 이 역시 완전한 해답에서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는 3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중 50%를 30년의 장기채로 롤오버 하고, 20%를 최고등급인 AAA 채권으로 교체해 장기채를 보증하며 30%를 현금으로 상환 받는 안을 제시했다. 30년 만기 채권의 쿠폰금리는 5.5%에 경제성장률을 반영해 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채무조정을 신용평가사들이 디폴트로 여길 경우 그리스가 국채 시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 더욱 험난해 질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가 디폴트 될 경우 그리스 은행들에게 대출 시 담보물로 받았던 그리스 국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채무 조정은 대형 유럽 은행 등 일부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막대한 그리스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을 보유한 유럽 대형 은행들이 손실을 우려할 경우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와 같이 서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는 신용 경색이 발생 할 우려가 있다.

모히트 쿠마르 도이체방크 투자전략가는 "자발적 롤오버는 유동성 문제 해결책이지 지급 능력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하다"며 "자발적 롤오버가 성공적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긴축 조치들을 수행하는 데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 지적했다.

그리스 정부가 의결한 재정 계획을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도 미지수다. 정부의 '중기 재정 계획'안은 2015년까지 정부 예산 280억 유로를 절감하고 공기업과 국영자산 민영화로 500억 유로를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해 이미 재정 긴축 안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며 이번에 의회를 통과한 5개년 계획도 지난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민영화의 경우 매각 가격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으며, 일부 부동산은 상업성이 입증되지 않아 500억 유로를 무사히 확보할 수 있을 지 불안한 상황이다.

긴축 안에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 한다. 그리스 거리에는 긴축 안이 요구하는 희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성난 민심이 긴축 안 반대 시위를 연일 지속하고 있다.

긴축 안 의결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8일 그리스 공공·민간 양대 노조는 올해 들어 네 번째 공동 총파업을 실시했고, 아테네에 위치한 의회 앞 광장과 그리스 제2도시 테살로니키 등에서는 공무원, 은행·건설업 종사자들, 의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파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긴축 안 의결 중에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최루 가스가 발포되는 등 시위가 폭력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

재정 계획으로 공공 부문 임금과 연금이 각각 20%, 10% 삭감되고 사회보장비 및 보건의료비 지출이 줄어들며 은퇴 연령이 앞당겨지고 세율이 인상된다. 여기에 탈세와 부패로 곪은 그리스 정치권 및 공공부문에 대한 분노도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80%의 응답자는 EU와 IMF의 도움을 받기 위해 더 이상 어떤 희생도 치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긴축 안통과가 성공했으나 시장은 여전히 그리스가 앞으로도 계속 디폴트를 피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 챈들러 브라운브라더스 해리먼의 글로벌 통화 전략 대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투표가 상황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사태는 막았으나 상황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그리스가 EU, IMF 등 외부의 도움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경쟁력을 향상시켜 시장에서 국채 금리를 다시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27%로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지급능력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그리스 경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리스 경제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릴지는 요원하다.

그리스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유로 구조의 취약함도 여전하다. 경제수준이 다른 17개 국가가 다른 재정정책을 사용하면서 같은 기준 금리와 통화 정책을 사용해야 할 경우 역내 경제격차가 더 확대되는 악순환은 유로 통화 연맹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탈세 등 그리스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척결될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그리스 노동부는 그리스 경제활동의 4분의 1에서 탈세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리스 문제를 미봉책으로 덮어둘 경우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이전에 구제 금융을 받았던 다른 유로존 국가들로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 또한 위험요소다.

존 립스키 IMF 총재 대행은 29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재정 계획안에서 재정 긴축은 일부분일 뿐이고 핵심은 그리스 경제의 경쟁력 개선을 위한 구조 개혁"이라며 "재정 문제는 경쟁력 상실의 징후이지 중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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