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내 한 대표기업의 인식..SRI가 시급한 이유
"잔소리 하려면 그냥 우리 주식 팔고 나가세요."
얼마전 한 외국계 연기금 A사의 애널리스트가 국내 대표기업 B사를 방문, 인명사고 대책을 물었다가 회사 투자자관계(IR) 담당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B사는 최근 몇년간 작업장에서 질병과 사고로 직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논란이 돼왔다.
이 애널리스트는 대량 지분을 보유한 주요주주는 아니지만 1%에 가까운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할 말이 맞나 싶어 "황당했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의 연기금인 A사는 특히 사회책임투자(SRI) 분야에서 이름이 높다. 사회책임투자란 투자대상 기업의 재무적 요인 뿐 아니라 ESG 즉,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인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투자 트렌드이다.
SRI 원칙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해당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 즉 ESG 부문에서의 경영전략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체크하고 미흡할 경우 이의 개선을 요구하는 '개입'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투자대상 기업의 평판이 나빠져 주가가 떨어질 경우 주주인 연기금과 기금 수혜자들이 재산상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연기금에는 '투자대상 기업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유를 확인하고 그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A 연기금이 B사를 방문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평판이 나빠진 기업이 주가가 떨어진 일은 드물지 않다. 글로벌 정유사인 브리티시페트롤륨(BP)가 멕시코만 정유유출 사고에서 큰 손해를 입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등으로 근로자들이 연이어 자살해 오명을 떨친 중국의 폭스콘도 대표적인 사례다.
A사는 지난해부터 B사에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계획을 내놓을 것을 수차례 요구해왔다. 최근에 와서야 B사의 최고경영진에서 대책회의를 강구하는 등 그나마 조금씩 진전이 있다고 B사를 방문한 애널리스트는 평가했다. 하지만 주주와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진 데 따른 수동적 반응이라는게 A연기금의 평가이다.
이 연기금 애널리스트는 "A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한국기업에서도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토로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주주라면 당연히 해당기업의 장기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에 대해 지적하고 이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기업들이 주주를 그저 배당만 받아가고 시세차익을 노려 주식을 사고파는 존재로만 보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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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株主)들 역시 과연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도 반문해볼 때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주식카페에는 "4200% 폭발 C사, 2000% 급등 D사를 능가할 초일류종목"을 운운하며 투자자를 현혹시키는 문구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단기차익만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기적인 기업가치 상승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지 않는 주주들...SRI의 확산이 시급한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