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지 14일(현지시간)로 3년이 됐다. 리먼 파산 직후 각국은 유례없는 정책 공조로 위기의 파고를 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협조의 강도는 느슨해지고 보호주의의 망령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있다.
신흥국 대표격인 브릭스가 다음주 워싱턴에 모여 유럽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겠다며 통 큰 협력 의사를 밝혔지만 '겉으로는 공조, 안으로는 각자도생의 분열'이 싹트고 있다.
◆"새로운 대공황과 국가주의의 부활"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보호주의로의 기나긴 추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책임지고 있는 한 관계자가 "새로운 대공황과 국가주의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FT는 또 "고조되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인 국제 공조와 리더십의 부재로 지금 상황은 (3년 전 리먼 파산 때보다) 더 암울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은 자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고실업, 경기 하강으로 글로벌 경제문제 해결에 앞장설 여력이 없다. 지난 7월말 채무한도를 높이기 위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심각한 정치권 갈등 때문에 글로벌 리더십은커녕 미국내 리더십도 찾을 수 없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정상들과 재무장관들이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연일 전화로, 대면으로 대책을 모의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회의만 거듭할 뿐 결정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내 자국 이기주의가 문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의 가장 힘겨운 협상 대상은 유로존 다른 국가가 아니라 그리스 지원에 대한 자국내 반대 여론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매입하며 위기 확산을 온 몸으로 막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조차 내부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ECB의 국채 매입을 반대해왔던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전직 부총재 출신 위르겐 슈타르크 ECB 정책이사의 전격 사임이 ECB 분열의 상징이다.
◆中 겉으로만 "우리가 남이가"..속으론 자국 이기주의
세계 2위권 경제로 부상한 중국은 주요국 가운데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가 많지만 글로벌 리더십을 사양하고 있다. 입으로는 "유로화 국채를 계속 매입하겠다"고 말하지만 재정난에 처한 유럽 국가의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진정어린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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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다음주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 국가들과 만나 어떤 내용의 유럽 지원책을 논의할지 미지수이지만 자국 이해에 반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오히려 글로벌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위안화 절상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보호주의와 환율 전쟁을 부추기는 '주범'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자유주의자임에도 중국이 위안화를 변동환율제로 바꾸지 않으면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지난주 주장했다.
브라질은 지난 7일 중국의 저가 강철관에 톤당 743달러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독립의 날이었던 이날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현재의 글로벌 위기에 직면해 우리의 주요한 무기는 자국 시장을 확대하고 보호하는 것"이라며 "브라질 산업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FT는 "경제위기가 어떻게 보호주의로 이동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日, G7 회의서 환율전쟁 명분 획득에만 주력
미국과 유로존 경제가 추락하며 달러와 유로 가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락하자 환율전쟁의 총성도 다시 울리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스위스프랑의 급격한 절상을 견디지 못해 유로 대비 스위스프랑의 상한선을 묶어두는 사실상의 유로화 페그제를 도입했다.
지난 9~10일 열린 주요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난 가운데 일본은 엔고 저지를 위한 시장 개입에 대해 다른 국가들의 침묵 속에 사실상의 동의를 끌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브라질은 이미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이 각국의 경쟁적인 통화 절하 움직임을 '환율전쟁'이라고 표현한 가운데 지난 8월말 깜짝 금리 인하로 헤알화 절상을 막기 위한 '몸풀기'에 들어갔다.
3년 전 리먼 파산 때 글로벌 공조의 틀이 됐던 G20은 오는 22일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다시 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23일부터 25일까지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이어진다.
하지만 FT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심각한 경제 문제와 끝없이 계속되는 공화당과의 논쟁에 발목이 잡혀 있고 중국 정부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며 "G20이 문제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또 "1930년대 초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처음에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에서 출발했지만 보호무역주의가 발호하고 유럽 은행위기가 뒤따르면서 대공황으로 악화됐다"며 "역사를 기억한다면 정치인들이 긴급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