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뢰의 위기..정치권 결단 '한 목소리'

유럽 신뢰의 위기..정치권 결단 '한 목소리'

권다희 기자
2011.09.14 14:28

"우리는 더 이상 미국 달러화를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머니마켓펀드가 우리에게 더 이상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다. 이런 건 처음이다. 시장이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악순환은 지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디폴트 직전에 내몰린 그리스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프랑스 대형은행 BNP 파리바 은행의 한 임원이 내뱉은 하소연이다. 프랑스의 경제·재정 리서치 협회의 니콜라 르코생 디렉터가 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자신의 기고문에서 이 같은 사연을 소개하자 프랑스 은행주는 이날 개장 초부터 폭락세를 보였다.

이에 BNP 파리바는 이메일 성명에서 "필요한 달러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소시에테제너럴은 프레데릭 우데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필요한 자금 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해명이 전해지면서 프랑스 은행주는 갑자기 급반등세로 돌변했다.

그러나 프랑스 은행주의 반등은 은행 측 해명이 먹혀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워낙 크다보니 조그만 재료에도 주가는 요동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주 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전화 회담과 관련해 유럽 시장이 크게 들썩거렸던 게 좋은 예다.

예컨대 로이터 통신이 프랑스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양국이 그리스에 대한 공동 성명을 낼 것이라고 보도하자 장중 유로화와 그리스 은행주가 급등했지만, 프랑스 정부가 한 시간도 안되어 공동성명을 부인하는 바람에 시장이 약세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이볼루션 시큐리티스의 게리 젠킨스 채권 헤드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서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시장이 그럴싸한 루머에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투기가 판을 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12일은 유로존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신용등급 강등 우려로 프랑스 은행주가 폭락했고,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CDS) 가격은 향후 5년내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확률을 90% 이상임을 시사했고, 이탈리아의 5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인 5.60%에 치솟았다.

여기에는 독일 정치인들의 정제되지 못한 발언들이 한 몫을 했다. 필립 뢰슬러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를 배제할 없다고 언급했고, 독일의 중도 우파 연정에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론까지 거론됐다.

사정이 이렇게 흐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유로존의 (재정위기) 이슈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세계 경제의 취약함을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라며 유로존 리더들이 재정위기에 책임을 지고 있는 모습을 시장에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화답하듯 앙겔라 마크켈 독일 총리는 독일 RBB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갖고 연정의 파트너들에게 금융시장에 혼란을 촉발하지 않도록 정치인들이 발언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고했다. 또 "그리스의 디폴트를 막기 위해 유럽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주장이 독일 정치권에서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에 대한 추가 구제자금 지원에 대한 독일 국민의 반감이 상당한 까닭이다. 독일 대법원은 독일이 기본법을 개정하지 않고, EU가 새로운 조약을 채택하지 않으면, 유로존의 공동펀드 발행을 배제할 뜻임을 내비치고 있다.

마뉴먼트 시큐리티즈의 마크 오스트왈드 애널리트는 로이터통신에서 "시장은 (유럽 정치권의) 결정적인 행동을 원하고 있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누군가 정말로 현재의 유로존 정책을 이해할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은 이탈리아 국내나 유로존 전체, 또는 독일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없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유로존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오는 금요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럽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이 모임에 미국 재무장관이 참석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로이터통신은 가이트너 장관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속한 비준과 기금의 추가 확대를 촉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참석중이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CEO도 유럽 정치권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는 "잘못된 조치를 취해지면, (경제) 시스템이 철로를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유럽 정치권이) 진지한 방법으로 경제위기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 역시 독일 쾰른에서 가진 연설에서 EU 정부가 대담한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예컨대 단번에 정치적인 통합으로 가거나, 자국의 재정을 책임지는 국가를 베이스로 한 통화동맹으로 돌아가던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바이트만 총재는 "공동으로 책임을 지면서 개별국가별 재정정책을 유지하는 중도적인 방법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시스템의 붕괴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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