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먹으며 ‘빨간 경제’ 촉각

김밥 먹으며 ‘빨간 경제’ 촉각

김부원 문혜원 기자
2011.10.06 10:36

[머니위크 커버]엄습하는 금융위기 공포/금융권의 처절한 몸부림

"오늘 주가가 많이 빠졌나 봐요. 위층에 있는 증권사 직원들이 끊임없이 김밥을 사러 오는 날은 주식시장이 많이 안 좋다는 얘기거든요." 얼마 전 코스피지수가 1600대로 주저 앉은 날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상가의 분식점 사장이 전한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위기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금융권 종사자들이다. 실제로 지난달 한 증권사 직원은 근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까지 발생했다. 어느 증권사에서 직원 몇 명이 사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을 정도다.

이런 금융권 분위기가 지금의 시장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각 금융회사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열심이다. 은행권은 현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외화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당장 손실을 최소화해 고객의 자금을 지켜야 하는 증권업 종사자들의 위기 대응은 거의 처절할 정도다.

◆달러 모으기에 총력

최근 은행들이 주력하는 것은 달러를 모으는 일이다. 다행히 아직 외화 확보 여력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얼마 전 은행의 외화유동성 여건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정훈외환은행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가 부도사태까지는 아니다. 외화수급이 일시에 빠져나가면 위험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우리은행 자금부 담당자 역시 "리먼 사태 이후에 외화유동성을 금융당국이 주도해 잘 준비하고 있는 편"이라며 "이전만큼 충격이 강하진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글로벌 경제회복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은행들은 외화유동성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일단 외화 대출을 중단하거나 제한해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는 상황.

또 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모으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현 시장 상황에서 투자자들도 채권에 투자하기보다는 현금을 보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외국계 채권자금마저 빠져나갈 정도라는 게 은행 측의 반응.

신한은행은 5억~10억달러 규모의 5년6개월 만기 해외채권을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연기했다. 마땅한 투자자가 없어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달러 수급이 쉽지 않자 아시아채권에 눈을 돌리는 은행들도 있다. 수출입은행은 8월 초 6200만달러 규모의 위안화채권을 발행했고, 한국정책금융공사는 9월 중순 3억9000만달러 엔화채권을 발행했다. 하나은행은 9월 말 태국 바트화 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

아울러 커미티드 라인(Committed Line, 외국 은행에 수수료를 주고 비상시에 달러를 조달 받는 것)을 구축해 외화유동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중대하고 급격한 시장변화가 발생했을 때 자금 사용 권한이 유효하지 않다'는 조항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커미티드 라인으로 인한 수수료 부담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스크 헤지에 안간힘

은행권에 비하면 증권업계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글로벌 경제 불안으로 국내증시가 곤두박질 치다보니 증권사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단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헤지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선물매도를 통한 헤지다. 한 투자자문사 운용역은 "주식트레이더들이 가장 선호하는 헤지 방법이 선물매도인데 평소에는 펀드매니저들이 각자 판단 하에 활용한다"며 "지금처럼 비상사태일 경우에는 CIO가 주도적으로 헤지전략을 지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장이 극도로 안 좋다보니 헤지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이 운용역은 "증시가 한창 빠지던 8월 중 선물매도로 헤지 한 후 증시가 오를 것이란 판단 하에 헤지를 중단했다"며 "그런데 예상과 달리 증시는 추가로 떨어졌고 결국 200억원 규모의 펀드에서 10% 넘는 손실을 봐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헤지 시에는 증시가 올라가는 리스크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면 리서치팀과 투자전략팀이 긴급회의를 갖고 포트폴리오를 구상한다"며 "하지만 선물로 대응하는 게 쉽지 않고 뾰족한 대안도 없으므로 경기방어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덱스인버스를 통한 헤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연주 에프앤가이드 연구원은 "코덱스인버스 20일 평균 거래량이 8월1일 기준으로 532만주였지만 9월1일 3171만주, 9월28일 기준으로는 4275만주로 크게 증가했다"며 "코덱스인버스를 통해 헤지를 하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눈물과 분노의 손절매

하지만 지금 같은 시장상황에서는 무주식이 상팔자란 말도 나온다. 더 늦기 전에 과감히 손절매를 감행하는 것도 현재 증권업계가 위기를 극복하는 최후이자 최고의 방안이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손실을 감당하고 주식 비중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평소 공격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하던 한 자문사는 얼마 전 대량으로 물량을 쏟아냈을 정도"라고 전했다.

개인의 판단이 아닌 회사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손절매를 단행하는 경우도 있다. 한 기관투자자는 "한 종목의 가격이 20~30% 떨어졌을 경우 물량의 20%를 매도하는 규정이 있어 이에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증권사는 로스컷 자동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공희정 하이투자증권 고객자산운용팀장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수익연동로스컷 시스템이 지금 같은 장세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로스컷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수익이 나면 일정 수익은 챙기고 로스컷이 실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손절매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한 증권사의 강남지점 PB는 "지금은 손절매를 할 수 없을 만큼 주가가 떨어져 반등하기만 기다리고 있을 뿐 달리 대응방식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울러 회사 내부 분위기와 직원들을 관리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한 증권업 관계자는 "요즘처럼 증시가 출렁일 때는 컴퓨터만 보고 있어도 멀미가 날 정도이니 불미스런 일도 발생하는 것 아니겠냐"며 "경험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더 격려하면서 분위기를 추스르려 노력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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