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영하 10도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회장이 엄수됐다. 발인에 이어 진행된 영결식에서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조정래 작가 등의 조사가 낭독됐다.
박 회장과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읽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조전도 대독됐다. 이처럼 쟁쟁한 인사들이 나서서 '철(鐵)의 사나이'를 애도한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이 우리나라에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고인이 그토록 애정을 쏟아 설립하고 키운 포스텍(전 포항공대) 측에서 조사를 낭독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 명예회장은 올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철의 사나이'가 내 별명이지만 나 스스로는 '교육혁명가'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교육에 열정을 쏟은 그였기에 더욱 그렇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 그의 지론이었던 '제철보국'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육보국'이라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회장 시절 포항공대를 비롯해 무려 15개 초·중·고교를 설립했다.
자신이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학을 배워 이를 조국을 위해 바쳤듯 후학들도 자신이 받은 교육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힘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만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고인의 말은 그가 얼마나 인재를 중요시했는지 말해준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실천한 그다. 만약 포스텍 학생들이 영결식에서 "자신들도 설립자인 고인의 뜻을 따라 애국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조문을 낭독했더라면 박 명예회장이 가는 길이 한결 흐뭇하지 않았을까.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은 중국에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짓기 위해 "박태준을 수입해야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세운 학교들과 그곳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남아 있다. 이제 고인이 떠난 자리를 대신할 제2, 제3의 '박태준'을 키워내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