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이야기] 길고 긴 밤에는 나에게 팥을 주오!!

[식재료이야기] 길고 긴 밤에는 나에게 팥을 주오!!

정민영 기자
2012.01.16 21:33

우리 조상은 오래 전부터 연말에 중요시 여기던 날이 있었다. 바로 작은 설날이라고 불리는 동지다. 동지는 1년 중 가장 긴 밤을 보내는 날이다. 이날 동지팥죽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곤 한다. 돌상과 환갑잔치 때도 팥떡은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진 풍습이지만 이사를 가면 떡을 해서 주변 이웃에게 인사를 하는데 이때도 팥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 빠지지 않는 팥. 한국인에게 팥은 어떤 식재료일까.

◇ 한국의 세시풍속에 얽힌 팥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먹는데 팥죽을 만들면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 가족이 모여서 먹었다고 한다. 이는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속의 유래는「형초세시기」에 공공씨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는데 이것도 악귀를 쫒는다는 풍속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경사가 있을 때도 팥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팥떡은 돌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결혼식, 이사, 고사 등 좋은 날에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 혈액순환과 신경성 질환에 만점

이모저모 알뜰하게 쓰이는 팥은 건강을 챙겨주는 효과적인 식재료기도 했다. 팥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하며 칼슘, 인, 철분, 지질, 비타민A, B1, B2 등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팥에 들어있는 비타민 B1은 각기병을 비롯한 신경, 위장, 심장에 걸친 다양한 증상에 대해 효과적인데 식욕부진, 피로감,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신경쇠약 등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수험생에게 더없이 좋다. 또한 혈액순환에 좋고 함유된 폴리페놀류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각종 혈액 관련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고 원활한 혈액순환과 피를 맑게 해 피로 회복은 물론 신진대사를 정상화시켜준다. 숙취예방과 해소에도 그만으로 수분을 빼 부기를 다스리고 해독작용을 한다.

◇ 현대적인 이미지를 더하다

팥이 가진 이미지는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다. 단팥빵과 찹쌀도넛에 핵심인 팥 앙금은 1970~1980년 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이자 현재는 고소한 맛으로 남녀노소를 사로잡고 있기도 하다.

팥이 주는 웰빙 이미지는 팥의 가장 큰 강점이다. 초콜릿보다는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달콤한 양갱을 디저트로 먹거나 선물해도 좋으며 팥죽이나 팥칼국수는 든든한 한 끼이자 영양소를 충족시켜주는 메뉴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의 건강을 채울 수 있다.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한 팥. 이번 동짓날에는 가족, 이웃과 함께 팥을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 정성으로 빚어내는 <신당동 泉 팥죽>

동짓날에 꼭 만들어 먹었던 동지 팥죽. 동글동글한 찹쌀경단을 빗고 걸쭉한 팥물을 만드는 데는 거창한 조리방법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에 정성이 필요하다.

서울시 신당동 한 시장 골목에 위치한 <신당동 泉 팥죽>에서도 따뜻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상호명 중 泉(샘천)을 사용한 것은 샘은 물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항상 마시기 알맞은 만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객에게 더도 덜도 하지 않고 언제나 좋은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전 대표의 경영철학을 담은 것이다. 옷과 앞치마, 손 사이사이에 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개의치 않고 손님을 맞이하는 이곳을 운영하는 전채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두 가지 팥 메뉴로 전문성 높여

신당동 시장 골목에 위치한 <신당동 泉 팥죽>은 외관부터 내부까지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지만 모든 것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1998년도에 오픈한 이곳은 서울에서 팥죽이 맛있는 집 중 하나로 유명하다. 동짓날 같은 팥죽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시기에는 길게 줄을 서서 먹고 가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팥죽과 팥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수제비를 메뉴로 구성해 판매했지만 전채호 대표의 불교 사상과 좀 더 좋은 음식을 내기 위해 팥 메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신당동 泉 팥죽>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는 팥죽(7000원)과 팥 칼국수(6000원) 두 가지다.

여름에는 시원한 서리태 콩국수(7000원)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담양이 고향인 전 대표답게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붓으로 쓴 투박한 메뉴 판과 가게 곳곳에 직접 쓴 붓글씨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장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주방에서는 긴 시간 함께 해온 큰 솥이 항시 대기 중이다.

-. 하나하나 정성으로 담는 그릇까지 신경써

매일 아침 큰 압력솥에 팥을 삶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팥은 기본적으로 국내산을 구해서 쓰는데 강원도 평창에서 생산하는 것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팥을 푹 삶은 후 체로 내려 팥물을 만든다.

팥죽에 들어갈 찹쌀 경단과 칼국수 면도 일일이 작업한다. 많은 양의 반죽을 손으로 할 수 없어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경단 성형과 칼국수 면은 손으로 일일이 직접 작업한다. 팥죽의 텁텁한 맛을 완화시켜주는 동치미와 겉절이도 직접 만든다.

배추 겉절이의 경우 매일 버무려 만들어 내고 동치미는 무를 아삭하게 숙성시켜 제공한다. 음식에만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그릇도 특별하다. 1인용 그릇은 모두 청자며 다른 식기들도 도자기를 사용한다. 다루기도 어렵고 신경 써서 관리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고객이 먹는 음식에 안 좋은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 인생철학을 투영시킨 팥죽

전 대표는 거창한 것을 바라지도, 탐욕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명함도 손으로 정성들여 상호명과 휴일 등을 적은 것을 인쇄해 쓴다. 1시간을 기다리더라도 꼭 먹고 가겠다는 고객이 고맙기도 하지만 매장을 좁아 좀 더 많은 고객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참 미안하다고.

그래서 현재 20석 남짓한 가게 앞에 작은 별관을 마련해 작업공간과 고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두 아들, 아내와 함께 가족경영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팥죽으로 꽁꽁 언 고객의 마음까지 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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